기후 위기와 코로나19 사태는 우리에게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근본적으로 바꿀 것을 요구하고 있다. 파주에 파주출판도시 생태계를 조사하고 이를 보존하기 위해 애쓰는 단체가 생겼다. 바로 ‘출판도시 갈대샛강 시민생태조사단(단장·강맑실)’이다. 이 조사단과 (사)에코코리아 협조로 교하도서관 1층 로비에서 멸종위기종·천연기념물 특별사진전을 개최하고 있다. 도서관 관계자는 “이 특별사진전은 근린 지역에 다양한 생태종이 살고 있음을 알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지역 환경에 관심을 갖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했다.

교하도서관 로비에 전시돼 있는 생태사진들

교하도서관 로비에 전시돼 있는 생태사진들

지난 1월에는 조류 사진 30점을 전시했고, 2월에는 식물과 곤충 및 기타 생물 30점(갈대샛강 풍경 사진 1장, 조사단 활동 사진 3점 포함)을 전시하고 있다. 

“육아를 하다 보니 새를 보러 갈 여유도 생각도 없었는데, 교하도서관 어린이실에 갔다가 우연히 전시를 보게 되었습니다. 철새로 유명한 고향 생각이 나면서 어릴 때의 기억이 떠올랐어요. 사진 중에 평소에 ‘신기하게 생겼다’고 생각했던 새도 있어서 반가웠고, 사진이라 모양을 천천히 자세히 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전시 관람객인 니카미 유리에 씨는 관람 소감을 밝히며, 새들의 자유로움과 신비함을 느끼고 위로받았다고 덧붙였다.

“평소 아파트 숲에 둘러싸여 살고 있는데, 가까이에 이렇게 다양한 생물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운정3지구 개발로 숲이 사라져 안타까웠는데 출판도시 습지에 관심을 갖고 잘 보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교하도서관 전은지 사서는 전시를 준비하며 다양한 생태종의 모습에 놀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 특별전시를 주관한 ‘출판도시 갈대샛강 시민생태조사단’은 지난 20개월 동안 매달 정기적, 또는 사안에 따라 수시로 조사를 해왔다. 이 과정을 통해 확인한 생물종은 식물 260여 종, 조류 100여 종, 포유류 8종, 어류 12종, 담수무척추생물 30여 종, 양서파충류 5종, 육상곤충 245종, 절지동물(거미) 및 기타 13종 등 700여 종에 이른다. 올해 예정된 곤충류 및 어류 전문가 특별조사를 마치면 실제 종수는 훨씬 늘어날 것으로 예상한다.

‘출판도시 갈대샛강 시민생태조사단’ 기획자이자 단원인 박경수(뜨인돌출판사 기획실장) 씨와의 인터뷰를 통해 ‘출판도시 갈대샛강 시민생태조사단’과 출판도시 생태에 관해 알아보았다.

[출판도시 갈대샛강 시민생태조사단(기획자 박경수) 인터뷰]


Q. 출판도시 생태에 관심을 두고 조사단을 꾸린 배경은 무엇인가요?

A. 예전부터 주말에 종종 출판도시에 산책을 나오곤 했습니다. 어느 겨울, 롯데아울렛 건너편 유수지 기슭에서 월동 중인 철새들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국제 멸종위기종인 ‘개리’들이 큰길 바로 옆에서 겨울을 나고 있다니! 개인적으로 환경단체의 생태 모니터링이나 탐조 센서스에 여러 번 참가했던 경험이 있는데, 개리 같은 희귀종을 그렇게 가까이에서 본 건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출판도시의 생태에 관심을 두게 되었고, 이후에도 저어새나 큰기러기 같은 법정 보호종들을 자주 발견했습니다.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지혜의 숲 근처에서 천연기념물인 황조롱이를 목격하기도 했습니다.

2016년 여름에 제가 근무하는 출판사가 출판도시에 입주했습니다. 여러 경로로 확인해본 결과, 출판도시가 생긴 지 20여 년이 지나도록 이 도시의 생물종 분포에 대한 체계적인 조사가 없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습니다. 외부 용역으로 단기간의 생물종 조사를 한 적은 한두 차례 있었지만, 계절에 따라 크게 달라지는 습지 생태계의 특성을 단기간에 파악하는 건 불가능합니다. 그나마도 생태조사 자체가 목적이었던 게 아니고, 수질 측정 등 다른 목적의 조사에 곁들여진 것이었습니다. 아마추어의 눈으로 보기에도 심상치 않은 출판도시의 생물종 다양성과 생태적 가치가 그냥 방치되고 있는 것 같아서 안타까웠습니다.

2019년에 저희 출판사의 고영은 대표께서 출판도시문화재단 신임 이사장으로 취임하시면서 ‘출판도시의 생태도시화’를 주요 사업목표로 제시하셨습니다. 곧바로 출판도시 생태조사 활동을 제안했고, 그 제안이 받아들여져 출판도시 최초의 체계적 생태조사를 본격적으로 준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의욕과 열정만으로는 체계적인 생태조사를 할 수 없습니다. 전문가들의 설계와 가이드가 꼭 필요합니다. 고양지역에서 오랫동안 시민생태모니터링 활동을 이끌었던 (사)에코코리아에 모니터링 설계와 가이드를 요청했고, 몇 차례의 사전 조사와 검토를 거쳐 2020년 6월부터 정식으로 생태조사를 시작했습니다.

정식 명칭은 ‘출판도시 갈대샛강 시민생태조사단’입니다. 사계절출판사 강맑실 대표님께서 조사단의 단장을 맡고 계십니다.


Q. 조사단 구성은 어떻게 하셨나요?

A. 조사단을 구성하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한 것은 ‘시민 참여’입니다. 외부 전문가들에게 비용을 지불하고 조사를 진행하는 것은 단순한 용역일 뿐이며, 조사 데이터 외에는 아무것도 남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 도시에 애착을 갖고 있는 출판인들과 지역주민들이 직접 조사에 참여하면 그 과정에서 역량 있는 내부 주체를 발굴할 수 있고, 그들은 훗날 이 도시의 생태계를 지켜나갈 보전의 주체로 성장하게 됩니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장기간에 걸친 정기 조사입니다. 계절에 따라 생물종 분포가 크게 달라지는 습지 생태계를 제대로 조사하려면 최소한 2~3년에 걸쳐 동일 장소들을 정기적으로 모니터링해야 합니다. 이는 외부 용역으로는 불가능한 작업이며, 시민들의 자발적 참여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시민들이 직접 장기적, 정기적 조사에 참여함으로써 양적, 질적으로 의미 있는 데이터를 확보해 나가는 것을 가리켜 ‘시민과학(citizen science)’이라고 부릅니다. 2000년대 이후 세계 각국에서 시민과학에 기초한 탁월한 성과들이 속속 보고되고 있으며, 그중에는 전문가 집단의 단기적 조사 결과를 압도하거나 심지어 뒤집는 경우도 드물지 않습니다. 출판도시 생태조사 또한 이러한 시민과학의 정신을 기본 토대로 삼고 있으며, 조사단 명칭에 ‘시민’이 포함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입니다.

습지에 서식하고 있는 동식물을 관찰하는 시민생태조사단원들

습지에 서식하고 있는 동식물을 관찰하는 시민생태조사단원들


Q. 시민생태조사단원은 어떤 분들이며,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하셨나요?

A. 조사 영역은 크게 식물, 조류, 곤충류, 포유류, 양서파충류, 어류, 저서생물류 등으로 구분됩니다. 현재 식물팀, 조류팀, 곤충팀, 저서생물팀 등 4개의 팀이 구성되어 있으며, 양서파충류와 포유류는 별도의 팀 없이 각 팀에서 공동으로 조사합니다. 에코코리아의 노련한 에코가이드들이 팀장을 맡고 있고, 저를 비롯한 출판인들과 인근 지역주민들이 각자 원하는 팀에 속해 함께 활동하고 있습니다. 현재 인원은 약 20여 명입니다.

생태조사는 월 1회 정기 조사(매달 세 번째 목요일 08시~12시)를 기본으로 하고, 필요에 따라 부정기조사를 진행합니다. 이를테면 하절기 양서류 야간 조사, 동절기 격주간 조류 모니터링 등등. 그렇게 조사된 내용들을 공유하고, 수서곤충의 알집이나 유충처럼 현장에서 곧바로 동정하기 어려운 것들은 채집 후 정밀 분석을 통해 분류합니다. 정리된 데이터들은 생태모니터링 전문 앱 ‘네이처링’에 등록하여 누구나 공유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조사 장소는 북센 뒤편 갈대샛강 상류 지점, 지혜의 숲 부근(중류 지점), 샛강 물이 한강으로 흘러나가기 전에 모여드는 유수지(하류 지점) 등 3곳이며, 사이트별로 식물군락이나 생물종 분포 측면에서 고유한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Q. 출판도시에는 어떤 생물들이 살고 있나요?

A. 지난 20개월 동안 출판도시에서 확인한 생물종은 식물 260여 종, 조류 100여 종, 포유류 8종, 어류 12종, 담수무척추생물 30여 종, 양서파충류 5종, 육상곤충 245종, 절지동물(거미) 및 기타 13종 등 700여 종에 달합니다. 올해 예정된 곤충류 및 어류 전문가 특별조사를 마치면 실제 종수는 훨씬 늘어날 것 같습니다.

그중에는 14종의 멸종위기종과 9종의 천연기념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멸종위기종 중 제일 많은 것은 조류(저어새, 개리, 노랑부리저어새, 흰꼬리수리, 수리부엉이, 참매, 잿빛개구리매, 새호리기, 큰기러기, 큰말똥가리 등 10종)이고, 양서류 2종(금개구리, 맹꽁이), 포유류 1종(삵), 곤충 1종(대모잠자리)이 발견되었습니다. 천연기념물은 저어새, 노랑부리저어새, 개리, 흰꼬리수리, 수리부엉이, 황조롱이, 독수리, 참매, 잿빛개구리매 등 9종입니다. 식물 중에서는 낙지다리가 산림청 지정 보호종으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멸종위기종이나 천연기념물은 희소성, 생태적 중요성, 문화적 상징성 등을 고려해서 지정되는 것이니만큼 당연히 보전에 힘써야 하겠지만, 보호종들만이 보전의 대상인 건 아닙니다. 생태계에서는 모든 생물이 고유의 역할과 기능이 있고, 그들이 입체적으로 맺고 있는 관계가 안정적으로 유지되지 않으면 곧바로 생태적 균형이 무너지게 됩니다. 개별 종을 보호하는 것도 물론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다양한 훼손 요인들을 제거하고 차단함으로써 습지 생태계 전체가 건강하게 유지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개리(천연기념물)

개리(천연기념물)

금개구리(멸종위기종)

금개구리(멸종위기종)

대모잠자리(멸종위기종)

대모잠자리(멸종위기종)


Q. 생태조사 시 애로사항과 보람은 어떤 게 있나요?

A. 생태조사는 정해진 장소에서 정해진 날짜에 반드시 진행돼야 합니다. 땡볕이나 맹추위를 몇 시간씩 견뎌야 하고, 폭우나 폭설이 쏟아져도 조사를 중단할 수 없습니다. 한여름에 갈대밭 속을 헤매거나 물속에서 채집하다 보면 온몸이 모기에 뜯기는 건 기본이고, 한겨울엔 머리와 눈썹에 얼음이 맺히고 손이 꽁꽁 얼어서 카메라 셔터를 못 누를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어려움은 새로운 생물종을 발견하고 기록할 때의 즐거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늘 똥과 발자국만 보여주고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던 삵을 마침내 발견했을 때, 멸종위기종인 대모잠자리의 집단 서식을 갈대숲에서 처음 확인했을 때, 긴가민가하던 하늘 위의 작은 점이 천연기념물인 참매로 확인되었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습니다. 이 도시의 생태적 가치를 입증함으로써 국가나 지자체가 보전 활동에 나서야 할 필요성과 근거를 차근차근 확보해 나간다는 것도 저희의 큰 보람 중 하나입니다.

참매(천연기념물)

참매(천연기념물)

삵(멸종위기종)

삵(멸종위기종)


Q. 활동 중 특별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무엇인지요?

A. 작년 여름에 멸종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저어새 한 마리가 무리와 떨어진 채 홀로 서 있는 걸 발견하고 사진과 영상을 찍었습니다. 나중에 사진을 확대해보니 다리에 낚싯줄이 칭칭 감겨 있었고, 낚싯줄 한쪽 끝은 펄 속에 파묻혀 있었습니다. 벗어나려고 계속 날개를 퍼덕거렸지만 낚싯줄은 풀리지 않았고, 날개 아래와 다리 위쪽엔 핏자국까지 선명하게 보이더군요.

다음날 일찍 다시 현장에 나가서 그 저어새를 찾았습니다. 여전히 그 상태라면 즉시 시청이나 야생동물 구조단체에 연락하려 했는데, 다행히 녀석이 낚싯줄을 풀고 무리들 틈에 섞여 있는 걸 확인했습니다. 안도의 숨을 내쉬긴 했지만, 지구 전체에 2천 마리밖에 남지 않은 멸종위기종이 낚싯줄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현실이 못내 씁쓸하게 느껴졌습니다.

그 밖에도 유수지 기슭에 설치한 무인 카메라에 새끼 삵들이 찍혔을 때, 멸종위기종 새호리기가 새끼를 키우는 둥지를 발견했을 때, 세계적 보호종인 금개구리가 발밑에서 튀어 올랐을 때, 기러기들 앞에 맹금류인 참매가 웅크리고 있는 걸 봤을 때 등 많은 순간이 기억납니다.

저어새(천연기념물)

저어새(천연기념물)

새호리기(멸종위기종)

새호리기(멸종위기종)


Q. 앞으로 생태조사단 활동 계획은요?

A. 최소 3년을 염두에 두고 시작한 만큼, 당분간은 출판도시의 생물종 분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지금까지 해왔던 정기조사에 집중하려 합니다. 그 과정에서 시민단원들의 조사 능력을 최대한 끌어올려, 나중에는 외부 전문가의 조력 없이도 자체적인 모니터링이 가능하게 하는 게 저희의 목표입니다.

아울러, 단지 조사와 기록만으로 끝나지 않고 실질적인 보전 활동이 이루어질 수 있도록 노력할 생각입니다. 출판도시 일대는 한반도는 물론이고 국제적으로도 주목받을 만큼 생물종이 다양하고 생태적 가치가 큰 습지입니다. 하지만 이곳의 파괴와 훼손을 방지하고 효과적으로 보전해 나가려면 출판도시 자체의 예산과 인력만으로는 매우 부족합니다. 앞으로 파주시, 경기도, 환경부 등 여러 행정기관에 필요한 재원을 요청하고, 출판도시 인근의 대기업들을 설득하여 ESG(친환경, 사회적책임, 지배구조 개선 등을 지향하는 경영방식) 차원의 지원을 확보해 나갈 생각입니다.


Q. 관계기관이나 시민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은 무엇인지요?

A. 출판도시에서 발견된 멸종위기종들은 쫓기고 쫓기다가 이 도시에 깃을 들인 새들이고, 마지막으로 이곳 습지에 알을 낳은 개구리들입니다. 최후의 순간까지 살아남아 유전자를 남기는 것이 그들의 몫이라면, 그들의 멸종을 조금이라도 늦추는 것은 우리 인간들에게 주어진 임무일 것입니다. 출판도시가 위기에 처한 생물들의 마지막 안식처가 된 것을 이 도시의 거주자로서 다행스럽게 생각하지만, 또 한편으로는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관계기관들은 자신들의 존립 근거인 ‘공공성’의 차원에서, 그리고 시민들은 지구 생태계의 일원으로서 출판도시의 생물들에게 관심을 기울여주시고, 습지 생태계 보전에 힘을 보태주시면 좋겠습니다.



“그 어떤 인간도 다른 생물들의 절멸 위에서 홀로 살아남을 수 없다”는 박경수 씨의 말처럼 자연을 대하는 태도를 바꾸는 시민이 늘어나길 기대한다. 또 관계기관과 시민이 주체적으로 파주의 자랑인 파주출판도시 생물에 관심을 갖고 이를 보전하는 데 힘을 보태기를 바란다.


[전시 안내] 출판도시 갈대샛강의 생물들

- 기간 : 2월 27일(일)까지

- 장소 : 교하도서관 1층 로비


* 취재 : 최순자 시민기자, 사진 : 출판도시 갈대샛강 시민생태조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