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히 지나치던 길가에, 산책하다 들른 산사에 문화재가 숨어 있다는 사실은 반갑고도 기분 좋은 일이다. 늘 거기 있어 소중한 줄 몰랐다가도 문화재임을 알게 되면 관심이 생긴다. 건물이나 사물이 가진 그만의 가치를 알게 되고 문화재가 들려주는 고유의 목소릴 듣게 된다.

문화유산(文化遺産)이란, 장래의 문화적 발전을 위하여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만한 가치를 지닌 사회 문화적 소산이다. 전통문화유산은 지정문화재로, 근대문화유산은 등록문화재로 선정·관리한다. ‘근대문화유산’은 만들어진 후 50년 이 지난 문화유산 가운데 보존과 활용을 위한 특별 조치가 필요한 것들이다.

2021년에는 파주의 문화재 총 4건이 지정·등록됐다. 파주 성재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坡州 聖在庵 木造阿彌陀如來坐像)은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됐고, 파주 갈곡리 성당 등 3건은 경기도 등록문화재로 신규 등록되었다. 보편적인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유산으로 다시 태어난 파주의 지정문화재와 등록문화재를 소개한다.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68호] 파주 성재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2021. 4. 16. 지정)

파주 성재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坡州 聖在庵 木造阿彌陀如來坐像)은 높이 42.7㎝, 무릎 폭 29㎝로, 성재암 극락전에 봉안돼 있다. 전형적인 조선 후기 불상 제작기법으로 조성됐으며, 불상의 이목구비 표현에서는 17세기부터 18세기에 활동한 ‘혜희-금문-마일’ 계보의 불상 조형감각을 보여준다. 혜희와 금문은 1655년 충북 보은 법주사 목조관음보살좌상, 1662년 전남 순천 송광사 관음전 목조보살좌상, 1666년 경기 안성 봉덕사 목조여래좌상 등을 만든 조선 후기의 대표적인 조각승이다.
성재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황해남도 안악군 월정사에 ‘혜희-금문-마일’ 계보의 불상으로 추정되는 불상이 봉안된 것으로 보아 혜희 계보의 조각승들이 경기 북부를 넘어 황해도에서도 활동했음을 알 수 있는 중요 지표로 인정되어 2021년 4월 16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368호로 지정되었다. 이를 통해 체계적인 보존 및 관리가 이루어지리라 기대하며 불상이 봉안된 성재암도 함께 소개한다.

성재암 목조아미타여래좌상

성재암 전경

성재암은 대한불교조계종 제25교구 봉선사의 말사이다. 조선 제7대 왕 세조의 비인 정희왕후(貞熹王后)가 부모님이 세상을 떠나자 이들의 극락왕생을 기원하기 위해 절을 지었고, 임금이 편액과 목불(木佛)을 하사했다고 전해진다. 오랜 시간 파평윤씨 문중 조상들의 명복을 비는 원당 역할을 해온 곳이기도 하다.

정희왕후의 부친, 윤번의 묘

파평윤씨 정정공파 묘역 안내판

성재암과 정희왕후 부모님 묘의 거리는 걸어서 10분 이내다. 이 일대에는 정희왕후의 부친인 파평부원군 윤번(尹璠, 1384년~1448년)의 묘와 중종의 비인 장경왕후의 아버지 파원부원군 윤여필(尹汝弼, 1466년 ~ 1555년), 중종의 계비인 문정왕후의 아버지 파산부원군 윤지임(尹之任, 미상 ~ 1534년)묘 등 3기의 부원군 묘와 5기의 정승 묘, 판서와 참판의 묘 수십 기가 산재한다. 2002년 9월 경기도 기념물 제182호로 지정되었다.


- 위치: 파주시 성재길 220 성재암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2호] 파주 갈곡리 성당(2021.10. 27. 지정)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2호 ‘파주 갈곡리 성당(옛 갈곡리 공소)’은 1954년 미군의 협조를 얻어 지역민이 지은 성당이다. 한국전쟁 이후 피폐했던 당대의 상을 보여주며 성당 주변은 구한말 이후 형성된 신앙 공동체 마을로서 초기 교회사적 의미를 인정 받아 등록문화재로 선정됐다.

갈곡리 성당 전경
(출처: 함영현 국제스포츠 드론 대표)

옹기를 굽던 성당 앞마당

성당이 자리한 파주 갈곡리(葛谷里)는 예로부터 칡이 많은 곳이라 해서 ‘칡의 계곡’(갈곡 : 葛谷)으로 불렸다. 순우리말로는 ‘칡울’(칡의 마을)이라 하여 ‘공소’ 이름도 원래는 ‘칠울 공소’라 불렀다.(공소: 본당보다 작아 주임신부가 상주하지 않고 순회하는 구역 천주교공동체의 장소)
갈곡리 마을은 한국전쟁 전에는 수풀과 아름드리 나무들이 우거져 있는 험한 지대였다. 동쪽에 있는 커다란 고개를 넘으려면 20여 명이 모여야 넘을 수 있다하여 ‘스르내미’(스물 넘어) 고개라 불렸다. 이렇게 험한 산중에 110여 년 전부터 사람들이 모여 살았다. 홍천과 인근 풍수원에서 종교 박해를 피해 온 천주교 신자들이었다.
처음에는 칠울에서 남동쪽 6km 떨어져 있는 ‘우골’(현 우고리, 우묵하게 들어간 골짜기)에 정착해 살다가 5년째 되던 해인 1896년 김근배 바오로, 김연배 프란치스코, 박 베드로 가족이 이곳 칠울로 이주하였다. 이로써 구한말 갈곡리와 신암리(경기도 양주시 남면 신암리) 일대에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이 옹기그릇을 만들어 팔며 신앙 공동체를 이루었다. 이들이 이곳 칠울에 정착한 동기는 인근에 점토가 많아 옹기그릇을 만드는 데 유리했기 때문이라 전한다.

- 위치: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 화합로 466번길 25(갈곡리 182)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8호] 파주 라스트 찬스(2021.10. 27. 지정)

라스트 찬스는 한국전쟁 이후 임진강 건너에 주둔하던 미군들이 이용하던 유흥 클럽으로서 미군 주둔 관련 시설현황을 보여주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당시 미군들이 사용하던 홀의 내부 벽면과 구조가 남아 있고, 파주 지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8호로 등록됐다.
지상 1층, 160.3㎡ 규모인 라스트 찬스 건물 입면은 아르누보 패턴의 모자이크 문양이 장식돼 있고, V자 기둥을 정면에 두어 미적 효과를 가미했다. 또한 출입구 바닥의 물갈기형 인조석은 한국전쟁 직후 건립된 이질적 외관을 드러내며 미군 주둔에 따라 형성된 지역적 특성을 보여준다. 따라서 외국군의 주둔과 주변 지역의 문화 변화상,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압축하는 상징적인 장소다.

라스트 찬스 입면

라스트 찬스 내부 벽면 장식(출처: 윤상규 상상청 대표)

라스트 찬스가 있는 장파리 마을은 한국전쟁 이후 미군기지의 주변마을이자 대표적인 기지촌으로 현대사의 아픔과 흔적이 마을 곳곳에 남아 있다. 주말이면 인근에 포진해 있던 주한 미군들이 몰려나와 주변의 상권도 활성화됐다. 번화한 마을에 클럽, 다방, 양복점, 식료품점 등이 즐비했으나 미군들이 철수하자 마을이 점차 쇠퇴했다. 한때 미국의 펍 문화를 수입하며 번성했던 라스트 찬스가 등록문화재로 재탄생했으니, 파주 시민으로서 축하할 일이다.


- 위치: 경기도 파주시 파평면 진동로 4(장파리 371-19)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9호] 파주 말레이지아교(2021. 10. 27. 지정)

말레이지아교 준공식 사진(출처: 국가기록원 누리집)

현재 말레이지아교 모습

‘파주 말레이지아교’는 1960년대 설립된 길이 60m, 폭 7.4m의 철근콘크리트 구조물이다. 1960년대의 우리나라는 전쟁의 폐허를 딛고 발전과 성장 과정을 거치는 고난의 시기였다. 전재(戰災) 복구를 위해 국제적인 협력관계를 통해 여러 나라로부터 경제적인 원조를 받기 시작했다.
1966년 말레이시아의 원조로 설립된 파주 말레이지아교는 당시 한국이 비교적 여유가 있던 ‘아센’(ASEAN: 동남 아시아 제국 연합) 국가들로부터 경제적 도움을 받았음을 밝히는 국제교류, 협력의 대표적인 상징물이다. 특히 개통식 사진을 통해 알 수 있는 지역민의 관심, 생활 밀접성 등이 당시의 시대상을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로 인정되어 2021년 경기도 등록문화재 제9호로 등록되었다.

- 위치: 경기도 파주시 조리읍 등원리 378-2 일원

현재 파주시는 국가지정 및 등록문화재 33건, 경기도 지정문화재 39건, 향토문화유산 34건 등 106건의 문화재가 있으며 이상 3건의 문화재 등록이 확정되어 총 109건의 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다.

* 취재 : 김순자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