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의 계절이 돌아왔다. 봄꽃들이 바쁘게 소식을 전해 온다. 더구나 올해는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예년에 비해 개화 시기가 7일~10일 정도 빨라졌다. 매화는 이미 져가고 남쪽의 벚꽃 소식이 북진하고 있다. 진달래도 한창이고, 산수유도 질세라 꽃망울들을 터뜨리기 바쁘다.

그런데, 매화/벚꽃/살구꽃/복사꽃 앞에서 그것들을 알아보는 일은 쉽지 않다. 멀리서 보면 식물학자들도 머리를 흔든다. 진달래/철쭉의 구분에서는 합격(?)하는 이들도, 꽃만 보고는 산수유/생강나무 앞에서 자신이 떨어진다. 척 보고 대뜸 라일락과 수수꽃다리를 구분할 정도이면 진정한 애호가다.

김춘수 시인은 명시 <꽃>에서, 그 꽃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저 몸짓일 뿐이고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만 진정으로 의미 있는 존재가 된다고 읊었다. 이름을 제대로 불러줄 때, 비로소 의미 있는 것들이 된다. 사람도 그렇다. 주부들이 누구의 엄마라는 대명사 대신에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데에는 유일한 존재로서의 값어치를 제대로 인정받고자 하는 소망이 깃들어 있다.

꽃들도 마찬가지다. 도매금의 봄꽃이 아니라 매화는 매화대로, 복사꽃은 복사꽃대로 유일한 존재로 알아봐 줄 때 그것들의 의미가 제대로 읽힌다. 그리고 알아보는 만큼 세상이 보이고, 보이는 만치 생각이 넓고 깊어지며, 그만치 성장한다. 성장한 만큼 깨달음이 커진다. 세상 만물이 그렇고, 꽃 세상 또한 매한가지다. 꽃은 때로 우리에게 깊은 의미로 남겨지는 무언의 스승도 된다. 특히나 그 열매 맺기의 숙연한 과정을 통해서.

진달래/철쭉/영산홍의 구별

알고 보면, 무척 손쉬워지는 것부터 살펴보기로 한다. 아래 사진은 차례대로 진달래, 철쭉, 영산홍의 모습인데, 이 셋은 모두 진달래과에 속하는 한 집안이다.

진달래

진달래

철쭉

철쭉

영산홍

영산홍

진달래와 철쭉/영산홍의 구분은 손쉬운 편이다. 진달래는 잎이 나기 전에 피고(3월), 뒤의 것들은 잎과 함께 피어난다(철쭉은 5월이 제철). 꽃이 지고 나서 잎만 있을 때는 털이 없는 게 진달래이고, 있는 게 철쭉/영산홍이다. 진달래와 철쭉은 속칭 참꽃과 개꽃이라고도 하는데, 진달래꽃은 독이 없어서 먹을 수 있지만 철쭉은 그렇지 못해서다.
철쭉과 영산홍에 이르면, 그 구분이 몹시 힘들어진다. 심지어 일부 기자들의 글에서조차 영산홍은 철쭉의 한 종류라 하는 것들도 있을 정도다. 아니다. 영산홍은 철쭉에서 개발되었지만, 종이 다른 별개의 종이다[종의 이름이 그 식물의 이름표가 된다. 이름이 다르면 소속도 다른 종이다].

영산홍은 반상록관목이고, 철쭉은 낙엽관목이다. 겨울철에 녹색 잎이 부분적으로 남아 있으면 영산홍이고 잎이 다 떨어진 건 철쭉이다. 봄철에 같이 꽃이 피어났을 때가 어려운데, 꽃색이나 모양으로는 전혀 구분되지 않는다. 그때도 이파리 부분을 들춰서 낡은 초록 잎(작년에 난)들을 달고 있으면 영산홍이고, 새 잎들만 달고 있는 게 철쭉이다.

진달래/철쭉/영산홍 중 대체로 향이 있는 건 철쭉 쪽이다. 진달래에서는 매우 미미한 풀 향이 나고, 붉은색 계통의 영산홍 꽃에서는 향이 거의 나지 않지만 개체별로 조금씩 달라지기도 한다. 철쭉은 백색 꽃 쪽(흰철쭉이라 한다)의 향기가 다른 색들에 비해서는 조금 강한 편이다. 하지만 붉은색 계통은 영산홍과 마찬가지로 향이 극히 미미하거나 없다. 그럼에도 군락으로 각색의 꽃이 피어나고 바람이 불면 그 향기들이 모여서 이동하기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향내를 즐길 수  있다. 5월에 백색~자홍색의 꽃들이 무더기로 피어 있는 곳에서 은근한 향내가 솔솔 풍겨오면 그건 십중팔구 철쭉 군락이다.

영산홍은 일본인들이 철쭉을 개량하여 새로 탄생시킨 원예종 중 별종이기 때문에 그 변종도 매우 다양한 편이다. 한 나무에서 세 가지의 다른 색 꽃이 피기도 하고, 최대 5종의 색색 꽃을 피우는 것도 있다.

아이의 뒤에 보이는 큰 화분의 것이 백색, 연분홍, 분홍의 삼색영산홍

아이의 뒤에 보이는 큰 화분의 것이 백색, 연분홍, 분홍의 삼색영산홍

라일락과 수수꽃다리의 구분

이 역시 알고 나면, 어렵지 않은 것에 속한다. 대부분의 세상 이치 또한 그렇지만... 라일락과 수수꽃다리의 공통점은 그 향이다. 그윽하면서도 진해서 4~5미터가 떨어져 있어도 향내를 맡을 수 있다. 라벤더/재스민/로즈마리 등과 더불어 식물성 향수에 빠지지 않고 들어가는 대표적 향 중의 하나다.
꽃 색깔까지도 닮은 이 둘의 쉬운 구분 표지는 꽃이 매달린 모양이다. 아래 사진들에서처럼 수수꽃다리는 그 이름처럼 대체로 수수처럼 한 줄로 위를 향해 피고, 라일락은 자유롭게 옆으로도 향해서 핀다. 하지만 수수꽃다리 꽃들도 옆으로 누워 피기도 하므로,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다. 옆으로 누운 꽃들은 세워 보면 수수처럼 보여서 알아보는 데에 도움이 된다.

라일락꽃. 뭉쳐피지만 일정한 방향은 없다.

라일락꽃. 뭉쳐피지만 일정한 방향은 없다.

수수꽃다리꽃

수수꽃다리꽃. 꽃이 매달린 모양이 수수 같고, 이름도 거기서 나왔다.
가로로 매달리기도 하지만 세워 보면 수수 모양에 가깝다.

이 둘의 가장 확실한 구분 표지는 잎이다. 라일락은 세로 길이가 가로보다 길고, 수수꽃다리는 비슷하다. 얼핏 보아 둥글넓적하면 그건 수수꽃다리다.

라일락 잎

라일락 잎. 세로로 길다.

수수꽃다리

수수꽃다리 잎.

라일락과 관련하여,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인기인 미스김라일락 이야기를 보탠다. 미국 가정에서 가장 많은 분화로 사랑받고 있는 품종인데(값도 싸다. 25불 안팎), 그 친정이 대한민국이다. 미군정 시절에 우리 북한산에 자생하는 털개회나무를 가져다 개량한 것인데, 그 미국인을 보좌한 ‘미스 김’의 이름을 따서 붙인 이름이다. 특징은 집 안에서도 손쉽게 기를 수 있도록 키가 작고 관리하기가 간편하다는 점이다.

미스김라일락. 키가 작고 아담하여 실내용으로도 적합하며, 향도 라일락과 비슷하다

미스김라일락. 키가 작고 아담하여 실내용으로도 적합하며, 향도 라일락과 비슷하다

이 미스김라일락도 역수입 종의 하나다. 외지에서 개량되어 로열티까지 붙기도 하면서 친정으로 들어 온 것들에는 우리의 특산종 구상나무가 원형인 크리스마스 트리도 있고 왕고들빼기가 아버지인 개량종 가시상추도 있다[유럽 원산의 가시상추와는 달리 잎 가장자리에 가시가 없다]. 이처럼 우리나라에는 외국에서 눈독을 들이는 씨앗들이 많다. IMF 시절 가장 먼저 외국인들이 매입한 것이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종자회사 두 군데였다. 고려인삼 생산량에서 지금은 중국이 우리를 앞지르고 있는 것도 인삼 씨앗 (밀)수입 덕분이었다[2015년 KOTRA 센양무역관 보고에 의하면 한 해에 400~500톤 규모].

다음 편에는 멀리서 보면 구분하기가 쉽지 않은 ‘산수유/생강나무’와, 전문가들조차도 멀리서는 쉬 구분하기 어려운 고난도 꽃들인 매화/벚꽃/살구꽃/복사꽃/사과꽃 등의 구분 요령을 살펴볼까 한다.

세상은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새로워진다. 그 출발은 자세히 보기다. 풀꽃 시인 나태주는 이렇게 읊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너도 그렇다'. <계속>


* 취재 : 최종희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