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리처럼 잎보다 꽃이 먼저 피고 꽃도 개나리와 흡사하지만 꽃이 흰색이어서 영어 명칭으로 '흰개나리(white forsythia)'라 불리는 미선나무. 
미선나무는 1속 1종으로 한국에만 자생하는 세계적인 희귀종으로, 오래 전부터 천연기념물(제14호. 후에 자생지가 훼손되어 지정 해제*)로 지정돼 왔다.
[*천연기념물 지정 및 해제: 보존 가치와 이유가 없어지면 해제된다. 일례로 천연기념물 제4호~9호는 서울 소재의 백송들인데, 그중 8~9호(재동과 조계사 소재 백송)를 빼고는 모두 해제되었다.]

히어리. 이름만으로는 마치 외래종만 같은데 이 또한 한국 특산의 자생종으로 앙증맞은 노란색 꽃이 아름답게 매달린다. 
미선나무처럼 잎이 나기 전에 꽃부터 핀다.

이 두 가지는 여러가지 공통점이 있다. 그중에서도 압권은 귀하신 몸들인데도 그동안 일반인들에게 그 진면목과 현주소가 널리(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미선나무와 히어리가 파주에도 있다. 조금만 관심하면 그 실물들을 대할 수 있다.

우리 속담에 ‘알고[다시/인제] 보니 수원 나그네’가 있다. 누군가 싶었는데 알고 보니 그 전부터 잘 아는 수원 나그네였다는 뜻으로, 처음엔 누군지 몰라보았으나 깨달아 알고 보니 알던 사람이라는 말이다.

미선나무와 히어리도 그처럼 조금만 관심하면, 우리와 엄청 가까운 나무다. 체구도 크지 않고 줄기 등도 연약한지라, 조그만 수고를 곁들여 아껴주면 더욱 소중하고 친근해지는 것들이다. 이 세상 만물이 다 그렇긴 하지만... 특히, 미선나무는 우리나라에서보다도 외국에서 더 대우를 받고 있는데, 우리와 달리 그들은 가까이 두고 자주 보다 보니 더욱 사랑스러워져서다.

미선나무의 어제와 오늘

미선나무는 50여 년 전의 초교 교과서에도 등장할 정도로 유명한 우리나라 특산이자 천연기념물이지만, 그 실물은 널리 소개되지 못한 채 이름만으로 유명세를 치른 대표적인 식물이다.

미선나무의 실제 가치는 그러한 특별 대우에 못지않은 꽃과 독특한 열매 모양에 있다. 사진에서처럼 고아한 흰색의 꽃을 무더기로 피워올린다. 열매는 마치 임금님 뒤에서 시녀들이 들고 있는 꼬리가 동그란 부채처럼 생겼는데, ‘미선(尾扇)’이란 이름은 바로 그 모양에서 나왔다.

미선나무의 꽃. 흰색(기본종)

미선나무의 꽃. 흰색(기본종)

둥근 부채 모양인 미선나무의 열매. 미선(尾扇)의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둥근 부채 모양인 미선나무의 열매.
미선(尾扇)의 이름이 여기서 나왔다.

미선나무는 1917년에 정태현 박사가 충북 괴산에서 처음으로 발견했고 그걸 1919년에 그의 스승인 일본인 나카이 교수가 학계에 보고하여 전 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미선나무의 학명이 Abeliophyllum distichum Nakai가 된 이유다. 학명 뒤에 붙이는 원산/특산지 표기인 koreana(coreana)가 빠진 것은 그 당시 한국이 자주 독립국이 아니어서였다. 나라를 빼앗기면 식물 호적조차도 사생아가 돼 버린다.

앞서도 적었듯 미선나무는 미선나무속에 단 1종밖에 없는 1속 1종의 귀한 식물인데, 그 바람에 최초로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었던 진천군 초평리의 미선나무는 손을 많이 타서 자생지가 전부 훼손되고 말았다. 천연기념물 14호가 지정 해제된 것은 그 때문이다. 하지만, 그 뒤로 여러 자생지가 추가로 발견되면서 현재는 괴산의 3곳과 영동, 부안의 각각 1곳 등 다섯 곳의 자생지들이 천연기념물[각각 147/220/221/364/370호]로 지정돼 있다. [천연기념물은 대상 식물보다도 자생지/군락지를 중심으로 지정된다].

미선나무는 흰색 꽃을 피우는 기본종 외에도 분홍색/상아색 꽃을 피우는 것과 꽃받침이 연한 녹색인 것, 그리고 열매 끝이 패지 않고 둥글게 피는 것도 있어서, 이를 각각 분홍미선/상아미선/푸른미선/둥근미선이라고 한다. 미선나무가 여러 나라에서 관상수와 정원수 등으로 사랑받는 데에는 이러한 다양한 변종들의 역할도 한몫하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에서 새로운 품종을 개발해 내기도 했다. 미선나무의 고향인 충북산림환경연구소에서 배양하여 올 3월에 특허 등록을 한 ‘꼬리별’이라는 신품종으로, 지상파 티브이에서도 일제히 화면으로 소개했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꽃잎의 끝 모양이 구부러져 있어서 다른 것들과는 쉽게 구별된다.

미선나무의 신품종. ‘꼬리별’의 꽃 모양

미선나무의 신품종. ‘꼬리별’의 꽃 모양

미선나무는 이처럼 족보상의 신분은 높지만, 실제 삶의 모습은 수수하기 그지없다. 건조하고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습하고 비옥한 땅은 도리어 좋지 않다), 번식도 아주 쉽다. 2년생의 가지/줄기를 15cm 정도로 잘라 잔모래에 꺾꽂이를 해주면 된다. 그 덕분에 현재는 이 미선나무를 길러 파는 묘목장도 흔해져서 묘목을 구하기가 손쉽다.

미선나무는 아래 사진에서 보듯 그 줄기가 가녀린 관목이어서 혼자서는 바로서기도 힘들다. 한두 그루가 아니라 여러 그루를 묶음으로 해서 길러야 수형도 잡히고 모양새도 난다. 전정할 때 가지 밑 쪽 3분의 1만 남기고 모두 잘라주면 충실한 가지가 나오며, 위에서는 서로 어깨를 겯고 있어야 수형이 유지되어 든든하고 보기에도 좋다.

미선나무 분화 전시회 풍경

미선나무 분화 전시회 풍경

미선나무 묘목. 단으로 판다

미선나무 묘목. 단으로 판다

서양에서 흰개나리로 불릴 정도로 외양이 개나리와 흡사한 미선나무가 개나리와 크게 다른 점은 두 가지다.

봄철에 잎보다 꽃이 먼저 피는 것은 개나리와 같지만, 개나리는 노란색인 반면 미선나무는 흰색(기본종)이다. 꽃 크기는 개나리보다 조금 작지만, 서로 포개져 몰려 피기 때문에 화려함에서는 개나리를 압도한다.

가장 큰 차이는 향이다. 개나리에는 향이 없지만, 미선나무의 향은 그야말로 미선 부채를 들고 선 시녀들에게서 날 듯한 그런 향기가 난다. 짙지는 않지만 품격이 높은 고상한 향내가 무척 은근하고 오래간다.

이 미선나무는 아래에 소개할 히어리를 섞어서 생울타리로 해도 좋다. 거기에 1년 내내 꽃을 피우고 멋진 잎도 풍성히 거느린 붉은인동을 미선과 히어리 사이에 배치하면 최고의 생울타리가 되지 않을까 한다.

히어리의 진실

외국어 명칭만 같은 히어리의 학명은 Corylopsis coreana Uyeki다. 이에서 보듯 한국 특산(coreana)이며 최초의 발견자(보고자)는 미선나무와 같이 우리나라 사람이 아닌 일본인 우에키다. 우리나라의 식물 분류학은 일인 학자들이 개척자들이어서 300여 종의 우리 식물들 최초 발견자 이름이 일본인으로 돼 있다.

이 히어리의 자태부터 살펴보기로 하자. 꽃은 짙은 노란색인데, 미선나무와 개나리처럼 잎이 나기 전에 꽃부터 핀다. 잎은 흔한 개암나무를 닮았다. 그래서 영어 명칭이 Korean winter hazel이다. hazel이 한때 헤이즐넛 커피라는 이름에서 애용되기도 했는데, 그 헤이즐이 바로 개암 열매를 뜻한다. 개암 열매 향을 첨가한 커피가 헤이즐넛 커피다.

히어리의 꽃

히어리의 꽃

히어리의 열매와 잎. 개암나무를 닮았다

히어리의 열매와 잎. 개암나무를 닮았다

히어리의 꽃은 앙증맞다. 샛노란 색으로 조롱조롱 매달려 있다. 잎이 하나도 없는 나무에서 알몸인 게 부끄럽다는 듯이 꽃들이 서로서로를 감싸주고 있다. 그 모양대로 열매가 맺힌다.

히어리는 송광(사)납판화라 불리기도 했다. 그만치 지리산과 전남 일대에서 관찰되었다. 하지만 지금은 강원도 망덕봉, 경기도 광덕산에서도 볼 수 있을 정도로 전국에 번져 있다. 꾸준한 자생지 보전과 현지 복원, 서식지 외 보전기관 등의 다양한 종보전 노력으로 2012년에 멸종위기종에서는 해제되었지만, 외국으로 나가기 위해선 허가를 받아야 하는 국외반출 승인대상 종이다.

그만치 소중한 우리의 생물자원이다. 최근 관상용/조경용으로 많이 심고 있어서 차츰 일반인들과의 얼굴 읽히기가 번지고 있다. 대규모로 묘목장을 조성한 곳들도 여러 곳이어서, 묘목도 쉽게 구할 수 있다.

히어리 묘목장

히어리 묘목장

우리가 자청해야 할 숙제

IMF 시절 우리나라 회사들이 외국인들에게 헐값에 팔려갈 때 제일 먼저 팔려 나간 게 종묘회사들이다. 그만치 우리 식물들에 대해 외국에서 더 눈독을 들이고 있다. 30여 년 전 과수 농사가 힘들 때 사과밭에 왕고들빼기를 심으라며 그 씨앗을 입도선매한 적이 있었다. 계약금이 과수원 수익보다도 높았다. 그 왕고들빼기가 모습을 바꾸어 우리에게 역수입된 것이 교잡종 가시상추인데 우리 식탁에 오른 지도 20여 년이 돼 간다.

이처럼 우리의 특산들이 부분 개량 후 역수입되어 몸값이 올라간 것들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미국의 분화용으로 인기를 누리고 있는 미스김라일락, 크리스마스 트리로 역수입되고 있는 구상나무 개량종 등등, 한참 된다.

하지만 개나리 역시 그 학명 Forsythia koreana에서 보이듯 우리의 특산 식물이지만, 그걸 귀하게 여기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제 우리는 우리 식물들의 원산지 팻말만 들고 그걸 자랑만 해서는 안 될 듯하다. 제대로 관심하고 제대로 살펴서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려면 우리 모두 파수꾼 겸 사랑꾼이 돼야 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다. 그러려면 가까이 두고 자주 대해야 한다. 위에서 소개한 미선나무와 히어리는 요즘 쉽게 그 묘묙들을 구할 수 있다. 식목일을 전후하여 도처에서 열리는 묘목시장에만 가도 있다.

제목에 매달았듯 미선나무와 히어리는 파주에서도 대할 수 있다. 야생의 것들은 모두 한곳에서 대할 수 있는데, 혹시 몰라서 구체적인 장소 대신 개략적으로만 공개하자면 삼릉 근처다. 그리고 개별적으로 묘목을 구하여 심어 기르는 곳은 여러 곳이다. 모두 사유지여서 공개하기가 어려운데, 일례로 출판단지를 돌다 보면 화단이나 화분에 심은 것들도 보이고, 광탄면에서는 묘목장 한 구석에서도 대할 수 있다. 출판단지에 둥지를 튼 나남출판사의 조상호 대표가 조성한 나남수목원에는 자신의 집에서 오랫동안 길렀던 히어리를, 아끼던 부인의 동의를 얻어, 일반 관람객들에게 완상용으로 이식해 두고 있다.

모든 꽃들은 무언으로 대화한다. 그 해득과 수확량은 사람마다 다르다. 낱개로 관심할 때만 그 대화가 제대로 해득되고 적잖게 수확된다. 꽃들에게서도 배워야 할 것들은 천지다. 그 내용물 역시 사람마다 다르다. 아는 만치 보이고 보이는 만큼 배우고 깨치게 되는 건 꽃들에게서도 예외가 아니다.

취재: 최종희 시민기자  jonych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