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대표적 4대 명물로는 임진강에서 잡히는 황복과 참게, 그리고 파주 일원에서 재배되는 장단콩과 개성인삼이 꼽힌다. 역사를 지닌 것들이 모두 그러하듯, 이 명물들에도 사연이 있다. 어제와 오늘의 상황에 많은 변화들이 생겼다. 그 앞뒤의 이야기를 전회에 이어 살펴본다. 이번 회에는 명물 2호인 파주 참게를 중심으로 들여다보기로 한다.

과거는 미래의 거울이고, 현재는 그 거울의 각도다. 과거를 바라보는 현재의 시선에 따라 미래의 내용물이 결정된다. 우리가 바로 지금 오늘을 엄중하게, 너무 늦지 않게, 돌아봐야 하는 이유다. 명물이라면 더욱 그에 합당한 관심을 갖고서.

예전의 파주 참게는 위용을 뽐냈고, 보무도 당당했다

대추 볼 붉은 골에 밤은 어이 듣드르며
벼 벤 그루에 게는 어이 내리는고
술 익자 체 장수 돌아가니 아니 먹고 어이리

파주에서 나고 자라 명재상으로 이름을 날린 황희가 지은 시조다. 그는 지금도 고향인 탄현면에서 영면 중이다. 가을이 되어 참게가 나오는 걸 보자, 저절로 술 생각이 났던 모양이다. 술을 거르는 데 쓰이는 체를 팔러온 장사꾼까지 동원하여 술 한 잔 생각을 정당화하고 있다.

그런 파주 참게는 임금님의 수라상에도 올랐고, 참게로서는 그 맛이 전국의 으뜸이었다. 성종 12년(1481)에 간행된 《동국여지승람》에 기재된 내용이다. 다른 지역의 것에 비해 흙냄새가 거의 나지 않은 덕분이었다. 그뿐 아니라, 생산량도 압도적이었다. 1934년 8∼10월에는 41만 4258개체가 잡혔다는 기록도 있고, 60~70년대에는 서울의 도매시장에서 거래되는 참게의 70% 가량을 차지했다. 그러던 참게 개체수가 급감하여 한 마리(100g 내외)가 꽃게 값보다도 비싼 1만 원대를 기록하여 ‘금게’로 불린 적도 있다(1996년 임진강 수계에서 수천 마리밖에 포획되지 않았던 때가 대표적이다). 또 동남참게와 구분할 때는 파주참게라 할 정도로, 우리나라 참게의 대표 주자이자 대명사 격이기도 하다.

그처럼 보무당당하던 파주 참게의 위용이 점점 과거의 영화로 변색돼 가고 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다. 가장 큰 변화는 파주의 생산량 감소와 국내 유통용 참게의 유입선 다변화이고, 거기에 게장 문화 안팎의 변화와 단순 활용의 한계, 생태 환경의 변질 등도 가세하고 있다.

파주 참게의 생애와 족보

참게는 바다와 기수부(바다와 민물이 섞이는 지역)에서 산란.포란.부화를 한다. 부화한 참게의 유생은 늦봄이면 하천을 따라 자신들의 부모가 살았던 곳으로 올라온다. 즉 회귀성 민물게다. 어린 참게는 민물에서 성장한 뒤 부모들이 그랬듯이 9~11월이면 산란과 월동을 위해 바다로 향한다. 산란을 마친 참게는 죽는데, 바다로 가지 못한 ​참게는 민물에서 굴을 파고 월동도 한다.

우리나라의 참게는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서해안 지역에서 주로 잡히는 일반 참게와 섬진강 주변을 중심으로 한 동남방에서 잡히는 동남참게가 그것인데(그래서 東南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동남참게와 구분을 해야 할 때면 ‘파주참게’(이하 ‘참게’로 약칭)라 적는 게 묵시적 관행이 되었다. 금강 지역에서 나는 것을 ‘금강 옥게’라고도 하지만 그것은 지역 상품을 특화하기 위한 속칭일 뿐, 파주참게와 같은 종이다.

이 두 녀석의 구분 표지는 주목 받는 시기(제철)와 등딱지 모양이다. 참게는 가을이 제철이고, 동남참게는 봄이 제철이다. 산란을 위해 이동하는 시기가 각각 가을과 봄으로 달라서다. 사진에서 보듯 등딱지 앞쪽의 가장자리가 참게는 뾰족뾰족한데, 동남참게는 둥글둥글하다. 다소 빠르고 씩씩한 물살의 임진강에서는 선이 거친 참게가 자라고, 얌전한 물살의 섬진강에서는 부드러운 동남참게가 자란다고 기억하면 구분하기가 쉽다.

(파주)참게와 동남참게의 등딱지 앞부분 비교. 참게(위)는 날카롭고 동남참게는 얌전한 편이다.

(파주)참게와 동남참게의 등딱지 앞부분 비교. 참게(위)는 날카롭고 동남참게는 얌전한 편이다.

파주 참게의 어제와 오늘: 파주산은 줄고 타향산은 늘고

전국을 압도하던 파주 참게의 생산량 급감 원인은 다른 지역들과 마찬가지로, 맹독성의 농약 살포와 생태 환경(산란장)의 변화를 들 수 있다. 그래서 ‘금게’ 소동이 나기도 했다. 그러던 생산량은 파주시가 매년 2억여 원을 들여 시행하는 인공 치어 방류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성과를 거뒀다. 생산량이 늘면서 대체제로 수입되던 중국산과의 가격 경쟁력도 갖출 정도가 되었다.

파주에서 해마다 시행하는 각종 민물고기 치어 방류 행사(2019. 파주시)

파주에서 해마다 시행하는 각종 민물고기 치어 방류 행사(2019. 파주시)

하지만, 그 뒤로도 계속 안정적인 어획고를 기록한 건 아니다. 2009년 북측의 황강댐 불시 방류 이후로 격감했다. 생태 환경이 급변해서다. 더구나 작년엔 가을비가 너무 자주 많이 와서, 파주 어촌계(☎031-958-8007)는 울고 싶은 심정이었다. 참게는 가을에 산란을 위해 이동하기 위해서 임진강으로 나오는데, 그때 물이 불고 물살에 세지면 참게가 휩쓸려 떠내려 가기 때문이다. 봄철의 가뭄 때문에 황복이 잡히지 않아 탄 속이 가을철 참게 잡이의 참패로 숯덩이가 되었다.

참게의 출신지도 다변화되었다. 중국산과 대량의 국내 양식 참게, 그리고 북한산까지도 중국을 우회하여 유입.유통되고 있다. 삼면초가다. 서울의 도매시장 석권은 꿈도 못 꾼다. 현재 국내의 참게 양식 어업권자는 300여 명이 넘는다. 그만치 많은 이들이 수조나 노천 양식장을 이용하여 참게를 양식한다. 1995년 이후의 일인데, 미생물 양식법을 비롯한 양식 환경의 발전으로 참게 맛에서도 차이가 나지 않는다.

파주도 임진강만 바라보고 있을 때는 아니다. 현재 시행하고 있는 산란장 생태 환경 개선은 장기적 사업이다. 단기적 가시적 소출이 가능한 양식 참게 역시 파주산이 된다. 파주에도 개인이 시도한 참게 양식장이 있지만, 타처의 것들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영세하다. 공공법인 규모의 참게 양식이 이뤄져야 할 필요가 있다.

제대로 된 간장게장만 밥도둑이다: ‘전통 게장 담그기’ 지키기와 지원

예전엔 참게매운탕을 먹으면서 밑반찬으로 맛본 간장게장의 맛을 잊지 못해서 간장게장을 한 보따리씩 사들고 갔다. 외지인들은 물론이고 파주 사람들도. 요즘엔 그런 풍경을 대하기 어렵다.

도둑 중에 사람들에게 이의 없이 받들리고 사랑까지 받는 도둑이 있다. 바로 ‘밥도둑’이다. 밥도둑 하면 곧장 게장을 떠올린다. 그중에서도 간장게장 쪽이다. 간장게장을 올바르게 담그는 법은 이렇다(꽃게나 참게 모두 같다): 게를 깨끗이 갈무리한 후, 살아 있는 상태에서 달인 간장을 붓는다. 이때 무·마늘·대파·대추·생강과 말린 고추씨 등을 함께 넣는다. 사흘쯤 지나면 게를 건져내고 간장을 두세 시간 달여 식힌 뒤 다시 게에 부어 사흘가량 더 숙성시킨다. 이렇게 장을 달여 숙성시키기를 두세 차례 하면 참게장이 완성된다. 간단하다!

20여 년 전, 간장꽃게장의 문제점이 KBS에서 집중 조명된 적이 있다. 문제의 근원은 꽃게 위에 간장을 한 번만 붓고 손님상에 내놓는다는 것이었는데, 업소 주인들의 변명은 한결같았다: 여러 번 달여 숙성시키면 게장이 짜져서 손님들이 싫어한다.

그런 변명은 조리법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이다. 게장을 담글 때 귀찮게시리 간장을 왜 3~4회 달여 부어야 할까. 아래는 식품기사 자격증 시험 과목 중 하나인 식품위생학에서 나온 문제다.

- 간장을 달이는 주요 목적이 아닌 것은?
①간장의 짠맛 부여 ②색 및 저장성 부여 ③미생물의 살균 ④효소의 파괴

④번이 답으로, 나머지 세 가지 목적으로 간장을 달여 붓는다. 게장은 생물을 쓰는 것이기 때문에 한 번만 부어서는 게 속의 수분들이 빠져나와 싱거워지고, 간장 색도 흐려질 뿐만 아니라 게 속에 들어 있을지도 모르는 기생충(참게는 폐디스토마의 중간숙주다)도 그대로 먹을 수 있기 때문에 간장을 달여 붓기를 여러 번 한다. 그리해야 제맛이 난다.
[참고: 꽃게의 아가미 속에서 꼬물거리는 바람에 한때 반품 소동까지 벌였던 그것은 기생충이 아니라 ‘옥토라스미스(게속살이)’라고 불리는 부착생물이다.]

파주의 참게 간장게장은 한 가지 더 특별히 신경 쓰는 절차가 있다. ‘축양(畜養)’이다. 잡은 뒤 바로 장을 담그지 않고 1주일 ~ 보름간 큰 수조에 참게를 넣고 민물고기 같은 먹이를 줘 살과 영양분이 통통하게 오르도록 하면서 흙냄새[해감]를 없애는 과정을 거친다. 임금님 진상품으로 전국 최고의 맛이라는 평을 듣게 된 근본 원인이기도 한데, 임금님용은 축양 기간 쇠고기를 먹였다고 전해진다.

요즘 나오는 참게 간장게장 중에는 축양을 건너뛰거나 간장을 한 번만 붓는 사이비 제품들, 있다. 그런 걸 먹으면 입에서 대뜸 거부한다. 게살 맛이 역겨울 정도로 비릿해서다. 더구나, 참게는 폐디스토마의 중간숙주다. 기생충 전문가 서민 교수에 의하면 간장에 15일 정도는 담겨야 안전하다. 일부의 얄팍한 상혼이 오래 지켜온 명성에 먹칠을 해대고 있다. 나아가 이제는 지역 소비에 주로 의존해야 하는 파주 참게의 매출액을 끌어내리는 자살골이기도 하다. 두지리 인근만 해도 IMF 환란 전에는 100여 곳이나 되던 것이 그 1/3만 남게 되었다고는 하지만, 파주 전체에 퍼져 있는 개별 업주의 자성(自省)과 공동체로서의 자정 노력은 계속돼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 번 달여 부어도 게장이 짜지지 않는 법이 있다. 숙성 기간이 지난 후에는 간장을 빼내어 따로 보관했다가 먹을 때 부어 내놓으면 된다. 게장은 오래 되면 속살들이 녹아나오므로 간장을 빼내어 따로 보관하는데, 그리하면 일석이조가 된다. 그 정도를 모르는 업주들은 없다.

장사가 안 돼서 속 터지는 업주들만 몰아세워서도 안 된다. 생계 문제는 생사 문제다. 농수산부에는 우리 농수산물을 이용한 전통 식품 조리법을 등록하면 지원을 해주는 제도가 있다. 능동적으로 해당 부서와 접촉하여, 축양법을 엄격히 준수하는 파주 참게의 간장게장 조리법을 등록하여 정부의 지원을 받는 길도 적극적으로 모색할 필요가 있다.

파주 참게의 현대적 이용 방안 하나: 키토산 생산 조합 시범 운영

키토산. 늙어가는 세포를 활성화하여 노화를 억제하고 면역력을 강화하여 질병을 예방한다. 생체의 자연적인 치유 능력을 활성화하는 기능과 함께 생체 리듬도 조절해준다. 갈수록 현대인에게 더욱 요긴해지는 물질이다.

참게를 포함한 갑각류의 껍데기는 이 키토산의 보고다. 다만 그냥 얻을 수 있는 게 아니라 탈아세틸화 과정 등을 거쳐야 하는데, 그 화학처리는 대표적인 공해 산업에 든다. 염산과 황산을 들이붓듯 하는지라 본 공장 시설보다도 폐수 처리 시설이 더 컸다. 그 과정을 미생물을 사용하여 친환경적으로 바꾸는 결과물이 우리나라에서 나온 지도 꽤 되었다[1993년 전남대 김지열 교수 팀].

키토산을 이용하여 나노 섬유의 인장 강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고도 생분해되는 키토산 비닐까지도 개발되었다[2019. 한국화학연구원 바이오화학연구센터 오동엽·황성연·박제영 박사 팀] 그만치 의료, 식품, 화장품, 섬유 등의 제조에 안 쓰이는 곳이 없다.

미생물 발효 제법을 이용한 키토산 생산 조합을 세워보면 어떨까. 처음부터 규모가 클 필요는 없다. 조합원은 현재 참게를 이용한 요리를 하고 있는 업주들이 되는 게 좋다. 그래야 게 딱지 수거가 용이하기 때문이다. 파주시가 조합원으로 참여하는 건 필수다. 필요한 기술과 시설 지원, 그리고 경영지도를 위해서다. 이 조합 또한 참게양식장 시설과 연계해야 하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이 사업이 성공하여 그 규모와 사업 영역을 점진적으로 확대하는 것은 모든 이에게 기쁨이 된다. 무엇보다도 죄도 없이 찬밥과 더운밥 사이를 오갔던 파주 참게가 기뻐할지도 모르겠다. 명물은 품어 안고 쓰다듬으며 아낄 때 아낌없이 그 이름값을 해낸다. 파주의 명물 2호 파주 참게의 보무당당했던 과거와 현재의 의기소침을 돌아보면 더욱 그런 생각이 든다.

* 취재 : 최종희 시민기자(jonych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