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늦게 한글을 배우는 어르신들을 위한 성인문해학교

뒤늦게 한글을 배우는 어르신들을 위한 성인문해학교

어르신들의 활동 모습을 전시한 공간

어르신들의 활동 모습을 전시한 공간

파주한마음교육관의 성인 중학학력인정 ‘파주한마음 성인중학교’(이하 한마음중학교) 제2회 졸업식이 지난 2월 9일 금촌역 앞 금강빌딩 4층에 위치한 한마음교육관에서 오전10시부터 순차적으로 열렸다. 코로나시대에 맞춰 4명씩 정해진 시간에 학교에 나와 졸업장을 받고, 포토존에서 사진을 찍고, 학교와 선생님들과의 이별을 고했다.

자기 시간에 맞춰 학교에 오시는 어르신들은 저마다의 배움의 한을 푼 이곳과의 이별이 서운했는지 모두 눈물을 글썽이며 들어오시고 나가셨다. 행복의 눈물임은 여쭙지 않아도 저절로 느낄 수 있었다. 코로나시대 졸업식 방식에 따라 몇 분만을 만나 만학의 소감을 들어보았다.

아들과 함께 졸업의 기쁨을 누리는 허옥란 어르신

아들과 함께 졸업의 기쁨을 누리는 허옥남 어르신

#허옥남(69세, 문산읍)어르신
허옥남 어르신은 학사모에 졸업가운을 입고 아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가장 먼저 졸업식장에 도착했다.
“선생님, 너무너무 고마워요. 자식도 이보다 더 잘해줄 순 없을 거예요.”
문순희 교장과 한참을 포옹한 채 고마움과 아쉬움을 전한 허옥남 어르신은 “국민학교만 졸업하고 가정형편이 어려워 공부를 못 했어요. 시집와서 배우려고 했는데 아기가 생기는 바람에 포기하고 여태 그냥 살아왔지요. 그러다 밸리선생님의 권유로 공부를 다시 하게 됐는데, 너무 잘한 결정이었어요. 저처럼 때를 놓친 분들은 창피해마시고 꼭 도전했으면 좋겠어요”라며 소감을 밝혔다.
어머니의 졸업을 축하해주러 함께 온 아드님은 “어머니가 자랑스럽다”며 “늦은 나이에 도전하시고 열과 성을 다해 공부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나도 저렇게 살아야지 하고 마음먹었다”고 말했다.
이번에 고교에 진학한다는 허옥남 어르신은 고등학교 졸업 후 봉사하며 사는 삶을 꿈꾸고 계셨다.

최고령 졸업생인 유순자 어르신

최고령 졸업생인 유순자 어르신

#유순자(광탄면,82세)
올해 최고령 졸업생인 유순자 어르신은 “이 영광을 열심히 가르쳐주신 선생님들과 3년 내내 맨 앞자리를 양보해준 친구들, 그리고 등·학교를 도맡아 준 남편에게 돌리고 싶다”고 말했다.
“파주에 이사 와서 노인복지관으로 공부하러 다녔어요. 배움이 부족했기에 거기도 좋았지만 정규과정이 아니어서 좀 실망스러웠는데, ‘파주소식’에 실린 문해교실 기사를 보고 여성회관을 찾아갔다가 문순희 선생님을 만났고, 파주에 중등 정규교육과정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너무 기뻤습니다.”
나이와 건강에 대한 남편의 염려로 진학은 포기한 상태라는 어르신은 “접수기한까지 남편을 다시 설득해 고등학교라는 세계에 들어가 보고 싶다”는 소망을 전하시는 말을 들으며 진한 감동이 느껴졌다. “평생교육으로 대신하면 안 되겠냐”는 기자의 우문에 “목표를 두고 공부하면 성과도 좋지 않겠나”하는 현답이 돌아왔다.
청력이 약해 양쪽 귀에 보청기를 끼시고도 학업의 꿈을 향해 도전하시는 어르신의 열정을 많은 청소년들이 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 만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김윤순 어르신

자신 만의 꿈을 키워가고 있는 김윤순 어르신

#김윤순(광탄면,74세)어르신
“제 꿈은 실버모델과 보육교사입니다.”
자신 있게 꿈을 밝히신 김윤순 어르신은 누구보다도 열정적으로 학업에 임하셨다.
교육문화회관(현 여성회관)에서 초등과정을 공부했으나 검정고시에 불합격하는 바람에
오전 9시부터는 여성회관에서 초등과정을 공부하고, 오후 1시부터는 한마음학교에서 중등과정 수업을 듣는 그야말로 악바리 학생이었다.
“배우지 못해 하고 싶은 것을 못하고 살았습니다. 이제 남은 인생은 배우면서 꿈을 이루고 살고 싶어요.”
코로나가 끝나는 대로 모델학원에 등록하여 학업과 꿈을 향한 도전을 병행할 계획이라는 김윤순 어르신은 올해 고교에 진학하며, 졸업 후 유아교육을 전공하고 싶다고 소망을 전했다. 매일 아침 스트레칭으로 하루를 시작한다는 어르신은 공부만큼 자기관리도 철저한 모범적인 졸업생이었다.

졸업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이종부 어르신

졸업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는 이종부 어르신

#이종부(조리읍,76세)어르신
조리읍 오산리에서 농사를 짓는 이종부 어르신은 남다른 책임감과 리더십으로 반을 이끌어온 반장이다.
“중등 인정 학교가 생겼다는 얘기를 듣고 너무 기뻐 찾아왔었는데, 3년이 금방 지나갔다”며 “너무 행복한 시간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영어와 한문을 가장 좋아했다는 어르신은 학교(고양시 소재, 파주시에는 없음)가 너무 멀어 진학은 포기하고, 한마음교육관에서 진행하는 평생교육 프로그램으로 영어와 한문, 컴퓨터를 공부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같이 공부한 친구들을 만난 것이 가장 기쁜 일이었다”는 어르신은 “이놈의 코로나가 끝나야 친구들을 만날텐테...”라며 아쉬워했다.

졸업식을 진행하며 화이팅 외치는 한마음성인학교 직원들

졸업식을 진행하며 화이팅 외치는 한마음성인학교 직원들

졸업생들을 축하하는 문순희 교장

졸업생들을 축하하는 문순희 교장

“도전하면 희망이 생깁니다.”
파주시에 중학학력인증 한마음성인중학교를 설립한 문순희 교장은 각각의 사정으로 저학력, 비문해로 살아온 어르신들에게 한줄기 빛과 같은 존재다.
문 교장에게 지난해에는 예기치 못한 코로나로 온라인 접근이 어려운 어르신들이 어떻게 수업했을 지 물었다.
“코로나로 수업이 들쭉날쭉해서 걱정이었는데 비대면 수업으로 이용한 밴드수업에 어르신들이 열정으로 잘 따라와줘서 너무 고맙고 기특했어요. 하반기에는 줌 프로그램을 일일이 깔아드리고 줌수업을 시도했으나 전체 입장은 어렵더라구요.”
이곳 어르신들은 급변하는 시대를 또래들보다 먼저 앞서가는 선구자들인 것 같아 바라보는 내내 흐뭇한 미소가 지어졌다.

“올해는 초등 18명, 중등 21명이 졸업하시는데, 초등은 15명이 진학하시고, 중등은 9명이 진학하십니다. 관내에 고등학력 인증 학교가 없기에 아쉽게 배움을 중단해야 하는 어르신들을 위해 파주시에 시민제안을 드렸습니다. 영어, 한문, 역사, 문학과 합창, 수예 등으로 프로그램을 계획해, 나누고 실천하는 인생을 모토로 평생교육을 진행하려 합니다.”
문교장의 한마음교육관 계획을 들으며 마음이 점점 따뜻해졌다.

‘나만 그런 줄 알았는데 나 같은 사람이 적지 않음에 놀랐다’는 한 어르신의 말처럼 배움의 기회를 놓친 분들은 늦깎이 배움을 창피해하지 말고 당당히 도전하여 배움의 즐거움과 성취감을 느껴봤으면 하는 바람이 들었다. 100세 시대를 맞아 요람에서 무덤까지 전 생애에 걸쳐 배우고 익혀야 한다는 ‘평생학습’이 사회적 이슈로 대두되고 있다.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이제는 누구나 언제든 배우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배움에는 때가 없고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

* 취재 : 김화영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