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6월이다. 남북관계가 경색됨에 따라 뉴스에서 연일 ‘파주’라는 이름이 등장한다. 파주는 분단의 상징이자 평화와 화합으로 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6·25 발발 70주년을 맞아 육로를 통한 교류의 창구 파주의 길 ‘통일로’와 파주읍 봉서리 통일로변에 위치한 ‘통일공원’을 소개한다.

■ 남북 대화의 시작과 통일로 조성

통일로(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통일로/사진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전라남도 목포시에서 출발해 평안북도 신의주시까지 연결된 총연장 498.7㎞의 도로가 국도 제1호선이다. 이 구간 중 49.2㎞인 서울특별시 은평구 구파발동에서 파주시 문산읍 임진각(臨津閣)에 이르는 도로가 바로 통일로이다. 이 길은 남북 대화가 시작되던 1971년 착공하여 1972년 고속화도로로 완성, 평화통일의 염원을 담아 통일로라 이름 지었다.

당시 정부는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십자회담을 제안하고 비밀리에 실무 접촉을 추진 중이어서 회담이 성사될 경우를 대비해 도로 확장 및 도로변 미관 개선이 매우 시급한 상황이었다. 도로와 노변 정비는 숨 가쁘게 추진되었다. 한겨울 교량 개설 시에는 시멘트가 굳지 않아 다리 전체에 천막을 덮고 연탄불을 피워가며 시공을 앞당겼다. 전 구간 중 40여 ㎞는 현대건설을 비롯한 10개의 건설업체에 시한을 정해 분할 시공함으로써 통일로 도로 정비는 어렵게 진행되었다.

■ 통일로변의 가옥을 정비하다

1970년대 초반 파주에는 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파주에 있는 집 대부분은 미군부대에서 버린 사과, 감자 궤짝으로 울타리가 되어 있었고, 지붕은 루핑(roofing. 시멘트 기와, 동판 펠트, 석면 슬레이트, 나무껍질 등으로 건물 지붕을 덮을 때 밑에 까는 재료)으로 덮인 초라한 가옥들이었다.’(송달용 前 파주시장 저서 『나는 파주인이다』 중 통일로 정비 사업에 대한 회고)

도로변 가옥 정비에도 다양한 이들이 동원되었다. 울타리를 철거하고 벽돌담을 쌓았으며, 작은 집들을 철거하고 슬레이트로 바꾼 지붕에 예쁘게 색을 입혔다. 전국의 목수, 미장공, 철거공무원, 마을 이장, 주민이 한마음이 되어 추진한 일이었다. 일조량의 많고 적음보다는 미관이 더 중요해 가옥의 방향이 도로변을 향하고 있다는 것도 당시 지어진 통일로변 가옥의 특징일 것이다.

■ 통일공원 조성과 공원 내의 탑과 비

통일공원은 1971년 3월 수립된 통일동산조성계획에 따라 1972년 4월 착공하여 1973년 6월 25일 개막식을 통해 문을 연 호국 보훈 상징의 장소이다. 6·25전쟁 때 개성, 문산 전투에서 전공을 세운 1사단 출신 2385주의 호국영령을 위로하고자 1959년 월롱면 위전리에 들어선 것이 파주 최초의 충현탑이었으나 통일로 확장공사로 일부 지역이 절단됨에 따라 현재의 위치로 이전하였다.

이곳은 1953년 휴전회담 당시 유엔종군기자센터가 있던 곳으로 약 4만 1000㎡의 넓이에 육탄 10용사충용탑, 순직종군기자추념비 등 총 9개의 비와 탑이 세워져 있다.

통일공원 육탄십용사충용탑

[통일공원 육탄십용사충용탑]

통일공원 육탄십용사상

[통일공원 육탄십용사상]

통일공원 임광빈중령기념비

[통일공원 임광빈중령기념비]

통일공원 충현탑

[통일공원 충현탑]

통일공원 이유중대령기념비

[통일공원 이유중대령기념비]

통일공원 소위김만술상

[통일공원 소위김만술상]

통일공원 종군순직기자추념비

[통일공원 종군순직기자추념비]

통일공원 살신성인탑

[통일공원 살신성인탑]

통일공원 육군첩보부대 제1지대전공비

[통일공원 육군첩보부대 제1지대전공비]

통일공원 개마고원반공유격대위령탑

[통일공원 개마고원반공유격대위령탑]

통일공원 6.25전쟁 전투현장 알림판

[통일공원 6.25전쟁 전투현장 알림판]

이 땅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벌어진 지 어느덧 70년의 세월이 흘러갔다. 전쟁을 겪은 세대와 상처 가득한 이산가족도 얼마 남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 땅은 국토가 단절된 섬나라와 다름없다는 사실, 무심코 지나다니던 이 길이 평화통일로 가는 중요한 길목이라는 걸 부디 잊지 않기를 바란다. 파주의 평화, 대한민국의 평화를 위해 얼어붙은 파주의 길이 환히 열리길 기대한다.

취재: 김순자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