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철새들과 백로

파주는 유명한 철새 도래지이고 서울에서 가장 쉽게 찾을 수 있는 곳임에도 그 실상이 충분히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다. 일반인들보다는 탐조가들에게 특히 더 유명한데, 그것은 가장 많은 종류의 철새들이 찾는 곳이라서다.

가장 흔한 겨울새인 쇠기러기의 군무(오금리)를 비롯하여, 장산전망대에 오르면 초평도를 찾아오는 천연기념물 202호 두루미와 천연기념물 203호 재두루미도 볼 수 있다. 독수리(천연기념물 제243-1호)는 덤이다. 특히 10여 년 동안 자취를 감췄다가 공릉천에 떼를 지어 찾아오는 바람에 KBS에서 특별 보도까지 했던 천연기념물 325호 개리는 거위의 조상으로 알려져 있다.

출판단지 앞 습지에서는 재두루미와 저어새도 함께 대할 수 있다. 재두루미는 탐조가들 사이에서 가장 섹시한 모습으로 꼽히는데, 제아무리 빼어난 미인조차도 거기에 미치지 못할 정도라는 평을 듣는다. 서해안 지역에서 월동하는 저어새는 부리가 주걱 모양이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는데, 녀석들은 무척 예민해서 가까이서 관찰하기가 어렵고 작은 섬과 같이 안전한 곳이 아니면 오래 머물지도 않는다.

재두루미

재두루미

저어새

저어새

그런 철새들 중에 백로도 있다. 백로는 왜가릿과의 새 가운데서 몸빛이 흰색인 새를 통틀어 이르는 명칭으로, 대백로/중대백로/중백로/쇠백로/황로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백로를 모두 어렵지 않게 대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이 바로 파주다. 백로 연구가들에게 파주가 자주 선택되는 이유다. 파주 전역의 논이나 호소 등에서 쉽게 볼 수 있는데, 특히 탄현면과 파평면 쪽이 개체 수가 좀 많은 편이다. 겨울철이면 임진강변의 논 등에서 떼 지어 있는 가창오리/청둥오리/고방오리 등을 비교적 쉽게 대할 수 있는 곳도 파주다.

운정호수공원[이하 ‘공원’으로 약칭]으로는 가끔 중백로와 쇠백로가 찾아와 잠시 머물곤 한다. 가장 흔한 것이 중백로이고, 쇠백로는 어디서고 개체 수가 적은 편이어서 공원에서도 어쩌다 대할 수 있다. 쇠백로는 다른 것들과 달리 다리 아래쪽이 노랑이어서 알아보기가 쉽다.

중백로

중백로

쇠백로

쇠백로

백로는 그 아름다운 순백색에 비하여 실제의 생활상은 반대다. 진흙 논이나 깨끗하지 않은 호소에서 먹이를 찾는다. 또 그 배설물은 독소가 강하여 배설물이 쌓인 나무들은 고사한다. 떼를 지어 머무는 곳에서는 주민들이 그 시끄러운 소리와 배설물에서 나오는 악취 때문에 민원을 쌓기에 바쁘다. 그럼에도 조류학자들의 결론은 대체로 익조(益鳥) 편에 선다. 얼마 전부터 해로운 조수로 확정.법규화된 까치와는 대조적이다.

이러한 백로를 두고 선조들은 서로 다른 두 가지 태도를 보였다. 아래 시조에서 보듯, 정몽주 모친은 겉의 순백색에 관심했고, 이직은 겉모습이 아닌 안의 실상에 시선을 두었다.

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
성낸 까마귀 (너의) 흰빛을 시샘하나니
맑은 물에 깨끗이 씻은 몸을 더럽힐까 하노라 -정몽주 모친 작

까마귀 검다 하고 백로야 웃지 마라
겉이 검은들 속조차 검을쏘냐
겉 희고 속 검은 이는 너뿐인가 하노라 -이직

모든 사물에는 이면이 있다. 동전의 양면이나, 태양의 빛과 그림자처럼. 하지만 그 어느 한 편도 진실을 독점하지는 못한다. 그럼에도 그럴 듯한 겉모습보다는 드러내어 자랑하지 않는 속살이 더욱 아름다울 때가 더 많다. 난부자든거지보다는 난거지든부자를 높이 쳐 왔듯이. ‘속 빈 자루는 똑바로 설 수 없다.’ 영국의 새뮤얼 존슨의 말인데, 먼 사촌뻘로는 우리말에 ‘속 빈 강정’도 있다.

맹모 삼천지교(三遷之敎)와 비단잉어

앞서 1편에서 공원 안의 많은 비단잉어들이 칙칙한 일반 잉어 색깔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을 소개한 바 있다. 비단잉어의 본래 모습들은 이와 달리, 민물고기 중 가장 화려한 색깔들을 자랑한다.

그 화려한 색깔들은 일본인들이 오랜 공을 들여 인공적으로 만든(개발해낸) 것들이다. 17세기에 일본 니가타현[新潟縣] 일대 산지의 소류지를 이용하여 ‘특별하게’ 사육·개량한 것이 그 주류를 이룬다.

그런데, 어째서 공원의 비단잉어들은 더 이상 비단잉어라 부르기에는 부끄러운 모습들을 하고 있는 걸까. 그것은 비단잉어들의 전용 사료를 먹이지 않아서다. 비단잉어들은 태어난 직후부터 그 색깔을 유지하기 위해서 색소 보존에 도움이 되는 영양 사료를 먹고 자라는데, 생육 기간 중에도 그런 사육이 지속돼야만 한다고 한다. 그렇지 않으면 변색되면서 시간이 흐르면 본래의 칙칙한 잉어 색깔로 돌아가고 만다.

그 때문에 너른 일반 공원에서 다른 것들과 뒤섞여 대규모로 방사돼 있는 비단잉어들은 시간이 흐르면 모두 그런 색깔들이 된다. 비단잉어 전용 사료를 계속 주는 일도 그렇지만, 주더라도 날렵한 다른 물고기들이 달려들어 먹어치우기 때문이다. 아래 사진에서 보듯 이웃인 일산호수공원의 비단잉어들 중 대부분이 변색되고 일부만 본래 색깔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 그 좋은 방증이다.

공원의 비단잉어떼
비단잉어 일산호수공원
비단잉어 본래 색깔들

모든 생물은 생육 환경에 따라서 바뀐다. 그 속도에 차이는 있지만. 유럽인의 정신 세계에서 종교혁명보다도 더 큰 충격을 준 건 다윈의 진화론이었는데(신의 인간 창조설을 부인하는 것이므로), 그 진화론의 뿌리를 제공한 게 갈라파고스 군도의 생물이었다. 1835년에 이 섬을 찾은 다윈에게 그곳은 요즘의 별칭대로 ‘진화의 전시장’이었다. 오랫동안 육지와 격리되고 세 개의 해류에 봉쇄되어 온 사이에 그곳에서만 볼 수 있는 진화 품종들이 가득했다. 비단잉어들의 변색은 생육 환경(사료)의 변화에 따라 생물의 외피도 변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사례에 불과하다.

맹모의 삼천지교(三遷之敎)가 있다. 사람이 자라는 곳의 환경에 따라서 어떻게 변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다. 맹자가 남긴 명저 <맹자>는 성선설에 기반한 적극적 인간 본성 개조론에 해당한다. 공자의 인(仁)에 의(義)를 덧붙여 인의를 강조했고, 왕도정치(王道政治)를 말했으며, 민의에 의한 정치적 혁명을 긍정하기도 하였다. 그가 그처럼 혁명적인 적극적 실천을 주장할 수 있었던 것은 어렸을 때 자신의 주변에서 흔히 대했던 사람들, 곧 묘공(墓工), 장사치, 학생과 교사 들에 대한 통사적 관찰 덕분이었다.

인간이 사회적 동물이란 말은 어쩌면 인간은 사회에서 양육/배양/개발되는 존재, 곧 사회적으로 사육되는 존재라는 뜻일지도 모른다. 그것을 교육이란 이름으로 부른다. 그리고 우리는 너와 내가 서로에게 교육자이자 피교육자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나 하나의 잘못이 언젠가는 나 자신에게 부메랑이 될 수도 있다. 가족과 이웃은 물론이고. 내가 흐린 물을 언젠가는 내가 마시게 된다. 꼭. 나도 모르게, 혹은 알면서도 그 후유증을 경시하고서, 잘못된 사회적 교육에 나서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볼 일이다.

* 취재 : 최종희 시민기자 (jonychoi@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