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첫날, 모처럼의 나들이에 아침부터 날씨가 끄무레하다. 팔십의 고영홍 어르신은 단단히 차려입고 집 근처 해솔도서관으로 길을 나섰다.
오늘은 해솔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 프로그램에서「땅 이름, 지역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라는 주제로 파주의 여러 곳을 탐방하는 날이다. 호가 동연(東淵)이라는 고영홍 어르신은 “거의 매일 해솔도서관을 찾고 있는데, 교육 과정이 개설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바로 신청했다. 코로나19로 한 번 연기되었다가 다시 진행된다기에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황포돛배에 오른 고영홍 어르신

황포돛배에 오른 고영홍 어르신

'길 위의 인문학'은 지역 공공 도서관별로 시행되는 인문학 강좌인데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최하고 한국도서관협회가 주관하는 사업으로, 2013년에 시작하여 해마다 열리고 있다. 지역 역사, 문화, 예술 등 다양한 콘텐츠를 활용해 인문학 강의와 탐방이 진행되며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이다.

땅 이름은 마을의 문화와 역사적 특징을 담고 있는 지역 정체성의 근본이다. 도시화 과정에서 사라져 가는 파주 지역의 아름다운 땅 이름과 현장의 연관성을 살펴보고, 지명의 올바른 이해와 중요성을 일깨우며 지역 정체성과 공동체 형성의 중요한 구심점이 될 수 있음을 밝히고자 이번 강좌를 추진했다는 해솔도서관 김덕겸 사서는 “여러 지명의 이해를 통해 다양한 파주 문화의 자긍심 고취와 마을 사랑, 지역 정체성 확립에 기여하고 이웃과 가족이 함께하는 탐방 체험으로 지역 주민들과 나눔과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한편, 지역 내 인문학 프로그램 운영을 통해 공공도서관의 지식 문화 공간 인식 제고 및 인문학 저변 확대를 기대하고 있다”며 강의 취지를 설명했다.

실내 강의를 진행 중인 이윤희 소장

실내 강의를 진행 중인 이윤희 소장

교육 과정은 10월 22일 ~ 11월 3일까지 5번에 걸쳐 강의와 탐방으로 진행되었다. 역사문화콘텐츠연구원 강진섭 원장이 “왜 땅 이름인가?”, DMZ생태평화학교 이재석 교장이 “땅 이름을 통해 본 파주의 마을”, 파주지역문화연구소 이윤희 소장이 “이야기가 있는 파주 땅 이름 기행”이라는 제목으로 강의와 탐방을 이끌었다. 삼십여 명에 가까운 인원이 일과를 마치고 저녁 7시부터 9시까지 도서관에 모여 주경야독을 실천해 나갔다.

정년퇴직을 앞둔 이대연 씨는 “좋은 교육이 해솔도서관에서 진행된다는 소식을 접하고 신청했는데 벌써 마감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아쉬운 마음에 대기자로 예약을 했는데 마침 빈자리가 나서 뒤늦게 참여했다. 파주 지명을 공부하던 차에 강사님들의 교육을 받고 나름대로 체계를 잡는 기회가 되어 많은 공부가 되었다”고 참여 계기를 설명했다.

금촌 야동동에서 동네 이름(풀무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금촌 야동동에서 동네 이름(풀무골)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오두산 전망대에서 교하 지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오두산 전망대에서 교하 지명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다.

경기도문화관광해설사로 근무하는 이현남 씨는 “가입한 밴드의 공지를 보고 강의를 신청했는데, 역시나 듣고 보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명은 그 지역의 특징, 특색을 잘 나타내고 있는데, 예를 들면 소나무가 많아서 ‘솔’자가 들어간 마을 이름처럼, 정겨운 옛 이름이 사라져 가는 것이 가슴 아프다. 그리고 순수한 우리말 이름이 한자로 표기되었다가 다시 우리말로 바뀌며 오기(誤記)되어 전해 내려오는 마을 이름도. 이번 강의를 통해 많은 것을 깨달았다”라고 수강을 마친 소감을 말했다.

이번 강의와 탐방을 맡아 진행했던 이윤희 소장은 “이번 해솔도서관에서 마련한 길 위의 인문학 ‘땅 이름, 지역 문화의 뿌리를 찾아서’는 최근 파주 지역에서 시행되고 있는 각종 개발 과정에서 사라지고 있는 땅 이름들을 최대한 보존하고 후세에 물려주어야 하는 매우 중요한 일임을 인식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특히, 최근 1,200여 년을 넘게 지켜 온 ‘교하’라는 땅 이름이 사라질 위기에 있어 이를 보존하여 지역 문화의 정체성을 지켜 내는 일이 시급하다. 교하 땅 이름을 묻어 버리지 말고 잘 살려서 다양한 지역 문화 콘텐츠로 활용할 방안을 모색해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며 강의를 마무리했다.

황희 선생 유적지에서 답사단 단체 촬영

황희 선생 유적지에서 답사단 단체 촬영

공공 도서관 '길 위의 인문학'은 파주시의 여러 도서관에서 진행되고 있다.
평소 인문학에 관심이 있는 분이라면 해마다 진행하고 있으니, 인근 지역 도서관을 찾아 알아보고 참여해 보길 추천한다.

* 취재 : 김명익 시민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