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정호수공원의 진귀한 새 손님들: 머스코비 오리, 왜가리, 민물가마우지, 대백로, 장끼 그리고...


우리 파주는 광활한 면적을 자랑한다. 서울시에다 안양시를 합쳐 놓은 것보다도 조금 더 크다. 게다가 100km에 이르는 임진강이 머리 쪽에서부터 옆구리까지 쓰다듬어 주고 가는 도농복합도시다. 도시 면적보다는 논밭 지역의 면적이 훨씬 넓다.

 

그 덕택에 파주는 우리나라를 찾는 철새들의 종류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해마다 수많은 철새 연구자나 탐조객들이 파주를 찾는다. 공릉천에서만도 여러 종류의 진귀한 철새들을 대할 수 있을 정도다. 희귀종인 재두루미 사진 중 우리나라에서 최고의 명작으로 꼽히고 있는 것도 출판단지 앞 습지에서 촬영된 작품이다. 적성면의 황조롱이 사진은 자연 상태에서의 황조롱이 모습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대표 사진으로 꼽힌다.

 

그래서일까. 운정호수공원에서도 이 철새들과 여러 종류의 새들을 접할 수 있다. 운이 좋으면 쇠백로와 중대백로, 검둥오리, 왜가리, 기러기에다 두루미 등도 대할 수 있다. 오랫동안 자리하고 있다가 철거된 거대한 황조롱이 조형물도 인근의 야당동이 서식지였던 황조롱이를 기념하고자 함이었다. 이곳에는 새들을 방해하지 않고 살필 수 있는 탐조대(探鳥臺)도 두 곳 설치돼 있다. 그런 운정호수공원에 얼마 전부터 이쁘고 깜찍한 녀석 하나가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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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호수공원의 탐조대, 사진 앞쪽의 작은 목조건물>


진귀한 머스코비오리의 등장

 

두어 달 전 파주구름놀이(와동 저류지) 주변의 수변 산책로를 걷는데 난생처음 보는 녀석이 물가의 조그만 쉼터에서 쉬고 있었다. 처음에는 칠면조인가 싶었는데, 아무리 뜯어봐도 크기가 칠면조보다는 작다. 하지만 칠면조의 등록상표(?)이기도 한 붉은색의 육질 돌기가 자꾸만 헷갈리게 했다.

  <와동저류지  주변의  머스코비오리>


칠면조는 수컷이 암컷의 두 배일 정도로 크기가 다르긴 하지만, 암컷조차도 우리의 닭 중에서는 비교적 큰 편인 수탉(장닭. 1.5kg)의 최소 두세 배가 될 정도로 크다. 칠면조 수컷들은 몸 길이가 1미터를 조금 넘기기도 할 정도라서 작은 것도 5kg를 넘긴다. 그래서 미국인들의 추수감사절 때면 떨어져 살던 온 가족들이 다 모이는데 칠면조 한 마리면 7~8인 정도가 배부르게 먹는다.

 

얼마 후 녀석을 또 대했다. 이번에는 아예 음악분수가 있는 용정저수지 쪽에서 유유히 헤엄을 치고 있었다. 찾아보니 '머스코비 오리' 또는 '사향거위'로 부르는 애완 오리였다. 본래 야생의 남미산이었는데 집오리로 개량했단다. 그래서 영어 표기도 domestic muscovy duck이라 하여 'domestic'이 붙어 있다. 이 말의 본래 의미가 ''이다. 그로부터 '국내'라는 의미로도 확대되었다. 기숙사를 뜻하는 domitory도 그 뿌리는 같다. 직장 내의 간이 숙박시설도 같은 말로 부른다.

 

<운정호수공원의  새 손님>
<머스코비오리(사향거위)의 멋진 유영>

내친김에 찾아보니 수컷은 암컷 칠면조 수준인 5kg 정도이고 암컷은 그 절반 정도란다. 그래도 암컷조차도 우리의 닭 기준으로는 치킨 가게 용어로는 25~30호쯤 되는 묵직한 녀석들이다.

 

녀석을 일명 사향거위라고도 하는데, 녀석의 육질 돌기 부분에서 사향(musk) 냄새가 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름 표기에서도 muscovymusk가 혼용되고 있다.

 

암튼 이 녀석은 누군가가 애완 오리로 키우다가 버거워 방사한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일반 가정에서 기르기에는 크기와 먹성이 장난이 아니다. 여러 해 전에는 이곳에 누군가가 기르다가 방사한 듯한 집오리 두 마리도 살고 있었는데, 한두 해 지나자 차례차례 종적을 감춘 적도 있다.​​

<한때 공원에서 쌍으로 지내던 집오리>


반가운 민물가마우지의 상주

 

새롭게 요즘 공원에서 반갑게 대할 수 있게 된 녀석으로는 아래 사진 속의 민물가마우지도 있다. 녀석이 반가운 것은 녀석 또한 본래 철새이고, 원래는 겨울철에 남해/서해 쪽의 강하구 등에서나 대할 수 있었는데 요즘은 파주에서도 간간이 대할 수 있어서다. 즉 텃새화되었다.


몇 해 전 애룡호수에서 녀석들을 대했는데, 하도 멀리 있어서 아무리 주밍을 해도 자태를 또렷이 담을 수 없었는데, 이제는 녀석의 전모를 아주 가까이서도 대할 수 있고, 텃새 살이에 익숙해졌는지 사람의 접근에도 도망치지 않는 담대함(?)을 내보이기도 한다.


텃새가 된 민물가마우지

흰빰검둥오리를 지켜보고 있는 민물가마우지

고정 놀이터로 삼고 있는 장끼들, 사시사철 볼 수 있다

 

10여 년 전 호수공원 바로 옆의 동산에 살고 있던 꿩 한 쌍이 봄이면 공원의 둑 쪽 풀밭으로 나와 사랑 후의 기쁨(?)들을 표현하곤 했는데, 요즘엔 최소한 대여섯 쌍으로 불어났는지 공원 도처에서 장끼들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더구나 봄철뿐만 아니고 사시사철 공원의 풀밭을 놀이터로 삼고 지낸다.

 

특히 녀석들 중에 고정 놀이터로 삼고 있는 데가 한 군데 있다. 아래 사진 속의 바위 근처다. 거의 아무 때나 가도 녀석을 대할 수 있다. 저기서 놀지 않는 녀석들은 풀밭과 갈대숲을 안방으로 삼고 지낸다. 희한한 것은 꿩의 수컷 곧 장끼만 주로 보이고 암꿩인 까투리와 어린 꿩 새끼인 꺼병이는 보이지 않는다. 이른 봄철에만 장끼와 까투리를 함께 대할 수 있다.

<장끼의 고정 놀이터가 된 바위>

이른 봄에  만나는 장끼

초가을에 만나는 장끼

운정호수공원의 터줏대감이 된 흰뺨검둥오리

 

며칠 전 흰뺨검둥오리 엄마가 자식들을 데리고 유유히 즐기고 있는 모습을 대했다. 흰뺨검둥오리는 아래 사진에서처럼 뺨 부분이 흰색이어서 알아보기 쉽고, 그래서 이름도 그런 이름이 붙었다.​​

 

<흰뺨 검둥오리>


녀석은 본래 철새다. 파주에서 가장 흔히 대할 수 있는 가창오리 떼 다음으로 많은 개체수를 자랑한다. (가창오리는 떼 지어 활동한다. 겨울철 드넓은 논을 독점할 정도로.) 그런데 녀석들은 이곳이 좋아서인지 아니면 떠날 일을 잊었는지 그냥 눌러산다. 그런 지도 벌써 10여 년을 넘긴다. 그래서 언제 가도 녀석들을 대할 수 있다.

 

하지만 아래 사진 속의 대가족 유영은 처음 대했다. 어린 새끼들을 챙기는 모습을 가까이서 대한 건 처음이었다.​​

 

새끼들을 일일이 챙기는 흰뺨검둥오리 어미
새끼들을 이끌고 가는 흰뺨검둥오리 어미

이 흰뺨검둥오리 일가의 이동 모습은 이따금 매스컴에서도 다룬다. 엄마가 자식들을 물가로 데리고 가기 위해 위험한 도로 횡단을 하기도 하는데, 그 모습들을 카메라에 담곤 해서다. 기특하게도(?) 그런 어미 오리 모습을 대하면 운전자들도 차를 멈추고 오리 가족의 무사 횡단을 돕기도 해서 보는 이들을 기쁘게 하기도 한다.

 

이 오리 가족을 한 달 후쯤에 다시 대했는데 어린 녀석들이 중치 이상으로 훌쩍 자라나 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어미 뒤를 졸랑졸랑 따라다니고 있었다. 이 흰뺨검둥오리는 가족애가 매구 각별하다. 특히 한 번 짝을 지은 암수는 평생 붙어 다닌다. 어딜 가도...


보기 힘들어진 진객(珍客): 검둥오리, 중백로, 왜가리, 기러기

 

운정호수공원에서 운이 좋으면 대할 수 있는 진객(珍客)들로는 검둥오리, 중백로, 왜가리, 기러기... 등도 있다.

 

검둥오리라 하면 그 이름만으로는 진객으로 여겨지지 않는다. 하지만, 몸 전체가 까만색인 검둥오리는 흔히 대할 수 있는 철새는 아니다. 제일 흔히 보는 청둥오리, 가창오리들은 몸 색이 여러 색깔이지만 검둥오리는 온 몸이 까맣다. 부리를 빼고는.


<흰뺨검둥오리 뒤에서 유영 중인 검둥오리>


이 검둥오리 두 마리를 3년 전에 공원에서 대했는데, 그 뒤로는 다시 대하기 어려웠다. 더 자주 찾지 못한 게으름 탓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이따금 대할 수 있는 중백로나 대백로의 모습은 위안이 된다. 전에는 쇠백로도 대할 수 있었는데 요즘엔 중백로 한 마리만 왔다 갔다 한다. (쇠백로는 발가락 색이 노랑이어서 쉽게 알아볼 수 있다). 즉 공원에 상주하지는 않고 근처의 다른 곳과 오간다. 아마도 공릉천이 아닐까 싶다. 그곳엔 백로들의 개체수가 이 공원보다 훨씬 부자다.​​

운정루에서 대한 중대백로

운정루에서 대한 중대백로

올봄에는 왜가리와 기러기를 각 한 마리씩 대했다. 잘 살펴보면 눈에 띈다. 행운이 더해지면 그 밖에 다른 녀석들도 대할 수 있다. 고고함의 최상급이자 천연기념물인 두루미()도 재수 좋으면 용정저수지의 무너미 쪽에서 접견할 수 있다.

공원에서 대한 왜가리

공원에서 대한 기러기

새들 이야기. 어찌 보면 아무 것도 아닐 수 있다. 더구나 바삐 바삐 살아야 하는 이 시대에... 하지만 녀석들 앞에서 잠시 멈춰 서서 턱을 괴고 지켜보다 보면 스치는 생각들이 있다. 그중 하나는 거의 모든 오리들은 쌍으로, 가족으로 지낸다는 점이다. 어딜 가도 쌍쌍이다. 공원 안의 터줏대감이 된 흰뺨검둥오리가 그 대표 격이다. 어디고 둘이서 붙어 다닌다. 권태기만 찾아와도 등을 돌리고 보는 인간과는 비교가 안 되게 낫다.​​

공원 안에 서 늘 짝을 지어 붙어다니는 흰뺨검둥오리 부부
공원안에서 늘 짝을 지어 붙어다니는 흰빰검둥오리 부부

값이 높으면 높을수록(진귀할수록) 혼자 지내는 녀석들도 있다. 순백색의 백로 쪽이 그렇다. 대백로와 같이 큰 녀석들은 함께 지내면 서로의 날개들이 닿는 게 싫은지 대체로 혼자 논다. 하지만 재두루미와 같은 진객들은 혼자 노는 법이 없다. 항상 대가족이다. 먹이활동과 번식 활동 등을 단체로 하는 게 더 유익하고 안전하다는 것을 터득해서인지.

 

문득 이 공원에서 홀로 지내는 두 녀석들 생각이 난다. 머스코비오리와 민물가마우지는 현재 홑몸(딸린 사람이 없는 혼자의 몸. 아이를 배지 아니한 몸)이자 홀몸(배우자나 형제가 없는 사람)이다. 우선은 보기에 짠하기도 하지만, 그러다간 언젠가는 우리가 녀석들을 더 이상 볼 수 없는 되는 날도 온다. 녀석들과 조금이라도 더 오래할 수 있도록 얼른 짝들을 맞게 되었으면 참 좋겠다.<>

 

[취재] 파주 알리미 최종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