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첫 주말에 들어서며 계속되던 장맛비가 잠시 소강상태에 접어들자, 시원한 바람이 파주 동쪽 끝, 광탄면 기산리에도 어김없이 불어온다. 비 온 뒤에 햇빛을 받은 풀잎들이 오늘따라 싱그럽다. 마장호수 진입로 근처, 고령산 자락에 살며시 내려앉은 아트린뮤지엄을 찾았다.


어찌 보면 난해하고 낯선 미학적 접근을 통한 양자물리학의 이해라는 제목으로 주제 발표회가 펼쳐진다고 해서 이른 점심을 먹고 서둘러 길을 나섰다.

'미학적 접근을 통한 양자물리학의 이해'  주제발표회1

'미학적 접근을 통한 양자물리학의 이해'  주제발표회1

일반적으로 예술과 과학은 상반된 것처럼 인식된다. 과학은 논리와 근거를, 예술은 감정과 표현을 다루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두 가지 개념은 사실, 그 어떤 개념들보다 서로 닮은 존재들이다. 둘 다 복잡하면서도 단순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현상과 사실은 표현하기 때문이다. 그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 곳곳에 숨어 우리 일상이 자연스럽게 돌아가도록 만들기도 한다.

이미지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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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물리학은 원자와 그보다 작은 입자의 행동을 다루는 물리학의 한 분야로 물질과 에너지의 가장 미세한 규모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연구하는 과학 분야이다. 원자와 소립자의 행동을 다루며, 파동-입자 이중성, 불확정성 원리, 양자 얽힘과 같은 독특한 특성을 보인다. 이러한 특성을 활용한 레이저, 반도체를 구성하는 주요 소자인 트랜지스터, MRI 등은 현대 사회에 유용하게 쓰이고 있다


파동-입자 이중성을 설명하다.

 

역사적으로 파동-입자 이중성은 빛이 과연 입자(粒子)인지, 아니면 파동(波動)인지에 대한 논란으로부터 비롯되었다. 빛이 두 가지 성질을 모두 지닌다는 사실이 실험을 통해 증명되었고, 이후 빛뿐만이 아니라 다른 모든 물질도 입자와 파동의 성질을 둘 다 지닌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원자핵의 발견은 물질 구조에 대한 이해와 탐구에 변화를, 물질의 핵심에 대한 지식과 정보는 인류가 과학과 예술을 바라보는 철학적 접근의 동기가 되었다. 위의 그림에서 보이는 "원자"의 이미지는 핵의 내부와 전자의 움직임을 표현하고 있다. 양자 역학에 따르면 전자와 같은 입자가 파동과 입자의 행동을 모두 나타낼 수 있는 파동-입자 이중성 개념을 표현하고 있으며, 그림에서 보이는 표상은 원자 내 전자의 불연속 에너지를 표현하고 있다. 아울러 핵 내부의 양성자와 중성자를 포함한 아원자 입자 간의 상호 작용을 표현했다. 과학에서 말하는 융합 및 분열과 같은 에너지의 반응은 예술과 철학에서도 응용되며 또한, 우주공간에서 발견되는 핵과 원소들의 독특한 결합이 본 작품의 바탕이 되고 있다.


빛과 어둠이 존재하는 카오스(Chaos; 혼돈, 무질서) 에너지는 자연의 섭리로 창조에 대한 운동량을 표현하고 있다. 위 그림에서 보이는 금속이라는 빛의 물성이 입자와 파동을 Or· And라는 주제로 설명하는데, 입자는 동시에 둘이나 그 이상의 장소에 존재할 수도 있다. 또한, 어떤 장소에 있는 물질은 입자로도 나타났다가 파동으로 나타나기도 하고, 시간과 공간을 넘어 나타날 수도 있다고 한다. 물질은 복잡한 카오스적 생성과 소멸하고 입자와 파동으로 다시 살아 나지만, 예술에 있어 입자와 파동은 조형의 운동량으로 승화되어 작품에 이입된다. 양자물리학이 붕괴 속에서 다시 탄생할 입자와 파동을 함유하는 것처럼 예술의 운동량도 이와 같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파동과 입자의 차이를 만드는 것은 관찰이나 측정 행위이다. 측정하지 못하거나 관찰되지 않으면 전자는 파동처럼 움직인다. 실험을 통해 그것을 관찰하는 순간 그 파동은 붕괴하여특정한 입자로 변해 위치를 차지한다. 따라서 파동으로 나타나는 전자나 광자(빛 입자)는 특정한 장소를 점하지 않고 확률의 장으로 나온다. Or ·And의 내용적 의미는 양자물리학에서 바라보면 이원론이 소멸하고 모든 사물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얽혀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불확정성 원리를 표현하다.

 

옛날에는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어떤 상태에 있든지 항상 동시에 측정이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과학의 발달과 더불어 측정 기술이 발전하면서 미시적 세계에서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은 동시에 확실하게 결정되지 않아, 입자의 위치와 운동량 모두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는 원리이다


위 그림의 중앙 부분은 순환을 표현하고 있다. 삶과 죽음도 동전의 양면처럼 하나로 얽혀 있음을 설명하고 있다. 죽음의 확실성으로부터 생명 탄생의 과정을 카오스적 생성과 소멸을 통해 새로운 탄생 과정을 표현하고자 했으며, 보이는 여백의 의미는 양자 카오스(Quantum Chaos) 운동량을 조형 언어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에 사용된 금속의 물성은 빛과 어둠의 원자들이 예측할 수 없는 이탈과 변화로 양자 역학의 불확실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확실성의 파괴를 조형 언어인 점과 선 즉, <입자와 파동>을 통해 순환을 설명하고 있다. 그림에서 보여주는 내용적 접근은 금속이라는 빛의 물성을 이용한 새로운 탄생과 죽음이라는 존재의 이원성이 소멸하고 둘이 아닌 하나의 우주로 설명한다. 혼재된 에너지를 변화와 수용으로 확실성(고정값)을 파괴하고 어둠에서 증폭되는 운동량의 에너지가 순환의 이치로 변화를 생성시킨다. 변화로 생성된 에너지는 고정값이 아니라 움직이는 값으로 양자 역학의 시각적 표현이 된다.


양자 얽힘을 논하다.

    두 입자가 먼 거리에 있어도 계속 연결되어 한 입자에 행해지는 작용이 다른 입자에도 즉각적으로 영향을 미치게 하는 물리적 현상이다.

   

인류가 살고 있는 세계의 기반은 시간과 공간이다. 하지만, 양자 역학의 세계는 모든 것이 항상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비국소성 개념으로 시공간의 개념을 앞서고 있다.작가가 바라본 것은 맨드라미이다. 맨드라미는 수많은 관계의 그물망과 상용하며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다. 응시하는 맨드라미는 원래 존재한다고 알고 있지만, 원래부터 존재한다면 그 어떤 변화도 있을 수 없다. 그림에서 보여주는 입자와 파동은 전체와 부분들이 원인과 조건들로 얽힘의 환경을 나비의 움직임으로 표현하고 있다. 우리의 마음은 자의식과 그것을 둘러싸고 있는 대상들을 개념적으로 명명된 모든 주관과 객관 속에서 독립된 존재로 투사하고 있다. 이러한 생각은 인류의 불행을 앞당길 수 있으며, 양자 얽힘을 인식하지 못하면 대상에 대한 자비도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감정이 대상을 만드는 관계의 하나라는 것이다. 얽힘과 자비의 의미는 인류가 독립된 존재로서 혼자만의 행복과 만족만을 생각하며 이기심으로 살아간다면, 결국 멸망을 앞당긴다. 영원한 행복은 얽힘과 자비라는 개념을 이해하고, 함께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안녕까지 염려할 때 성취된다고 생각한다. 얽힘은 자비로운 마음의 세계가 근간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다. 이것은 양자물리학이 현 인류에게 이로움을 줄 수 있는 커다란 혁신이며, 과학과 종교와 철학의 공통된 메시지이다.



주제발표자인 배일린 관장학창 시절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사람)로 물리학, 화학은 물론 수학적인 기초가 부족해 시험 성적도 빵점에 가까웠다. 그런 사람이 작가가 되고, 더구나 양자 역학에 ‘0’도 모르는 내가 거기에 관련된 그림을 그렸다니 아이러니하다. 젊은 시절 한국화 작가로서 세계에서 두각을 내보자 노력했지만, 동양화, 즉 한국화로는 쉽지 않다는 걸 깨달았다. 이런 그림은 중국에는 너무 흔하고 그들과 차별화되기도 어려웠다. 뭔가 바꾸지 않으면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하고 탱화에 손대기 시작했다. '탱화'란 불화로도 불리는데 부처, 보살, 성현들을 그려서 벽에 거는 그림을 말한다. 한때 '우리 것이 세계적이다!'라는 캐치프레이즈도 있었다. 우리 민족은 오랜 역사 속에서 불교와 함께 살아왔다. 국가 정서상 불교사상과 일맥상통하기도 하고, 불교를 현대미술로 끄집어내서 어떻게 표현하느냐가 관건이었다. 이렇게 내 관심사는 온통 티베트 탱화였고, 보통 미술작가는 보통 일 년에 한 번씩 개인전을 여는 편이지만, 10여 년간 개인전을 접고 티베트 탱화에만 몰두했다. 그러다 보니 작품도 쌓이고, 탱화가 주는 철학적 의미라든지, 작가의 이미지, 생각이 커다란 만족을 주었다. 티베트 탱화의 핵심은 보이지 않는 세계이다. 보이지 않는다는 것은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죽음의 세계를 어떻게 '이미지화'하느냐가 관건이다. 죽음이라는 명사를 객관적으로 표현하기가 정말 어려웠으나 역설적으로 '빛과 어둠'을 주제로 삼아 풀어 나갔다. 빛과 어둠의 관계는 주체와 타자와의 관계뿐만 아니라 세상과 세상의 관계이기도 하다. 이러한 빛과 어둠의 이분법적 구도는 대립이 아닌 보완적인 관계이므로 서로가 녹여내고 포용하며, 큰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중요하다.  

양자물리학은 도()와도 일맥상통한다. 노자의 도덕경에 상반상성(相反相成)“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는 주역, 태극을 비롯한 음양 사상에도 나타나는 동양철학의 핵심으로

서로 모순되고 대립하는 쌍방이 모두 같이 존재한다는 존재론적 관점이다라는 뜻이다. 결국 양자 역학을 어렵게 학문적으로 접근하기보다는 우리가 살고 있는 주관적 실체인 생명체와 원자, 객관적 실체인 원자와 자연을 폭넓게 아우르는 우주를 생각한다면 보다, 편하게 접근할 수 있을 것이다라며 발표를 마무리하면서, “미학적 접근을 통한 양자물리학의 이해는 다 잊어도 좋으니, 여러분 모두가 <잘 먹고, 잘 살고, 잘 얽히자!>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이후 주제 발표에 대한 질의응답과 유충식 밴드의 환영음악회로 이어졌다.

 

모처럼 파주에서 눈 호강과 귀 호강을 하는 뜻깊은 자리가 펼쳐져, 정신적으로 풍요로운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주제 발표회는 끝났지만, 관련된 미술작품은 계속 전시되고 있다. 아트린뮤지엄을 찾는다면, 이제라도 색다른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는 열려있다. 마장호수 방문과 연계하여 함께, 문화관람의 기회를 엿보길 추천한다. “

 

취재: 김명익 파주알리미

 

* 아트린뮤지엄 소개

미술관 및 카페 이용 시간 : ~ 일요일 11:00 ~ 18:00 (입장 마감은 17:00)

- 매주 월요일 휴관

관람료: 성인 7,000 (19세 이상) / 어린이, 청소년, 군인, 단체 4,000

- 1전시실 관람 : 카페 이용객은 무료

-주소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기산로186번길 59

-전화: 031 946 - 6428

www.artrin.kr / 블로그: 아트린(artrinmuseum) / 인스타그램: @artrinmuseu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