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의 현미경이 대한민국의 망원경도 된다: 유물 증기기관차 미카3형과 퇴역한 팬텀기

 

임진각은 대표적인 파주의 관광지 중 하나다. 볼거리도 많다. 한 번의 방문으로는 모두를 제대로 훑거나 맛볼 수 없을 정도로 많다. 그중에는 수많은 사연들을 간직한 채 조용히 방문객들을 맞는, 의미 있는 유물들도 적지 않다. 자유의 다리, 독개다리를 필두로 경의선 중단점에서 철마는 달리고 싶다를 외치고 있는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등등.


경의선 장단역 증기기관차.

1950년 연말 군수물자를 운반 중이던 열차가 중공군의 개입으로 운행 불가하여 장단역에서 멈췄다. 그 후 반세기 넘게 비무장지대에 방치되어 있다가, 200426일 문화재로 등록됐고 200812월에 보존 처리를 마친 뒤, 20096월 일반에게 임진각의 독개다리 못미처에서 공개되어 전시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외관이 깨끗하면서 숱한 사연을 안으로만 끌어안고 소리 없이 방문객들을 맞는 소중한 유물 두 가지도 있다. 오늘 그 사연들을 살펴보려는 증기기관차 미카3224호와 F-4D 팬텀기가 그것들이다. 이 두 가지는 우리나라 증기기관차와 공군 전투기 발전사에서 매우 중요한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증기기관차 미카3224호와 우리나라의 증기기관차 약사 

평화누리공원에서 쉬고 있는 증기기관차 미카3224


증기기관차는 우리나라에서 60년대까지 활약했다. 60년대에 기차를 타 본 이들은 열차가 터널로 들어가면 꽉 닫히지 않는 열차 창문으로 스며든 야릇한 냄새를 맡아본 기억들이 있으리라. 당시는 석탄 사정도 좋지 못해서 질 낮은 갈탄이나 역청탄도 썼기 때문에 그런 냄새들이 연기 속에 섞여 객차 안으로 스며들곤 했다.

 

그 시절에 역두에서 열차를 기다리고 있으면 증기기관차의 씩씩하고 우람한 머리가 나타나곤 했고, 그 기관차의 얼굴에는 위의 사진에서처럼 글씨도 선명하게 미카파시라 적혀 있었다.

 

이 미카와 파시는 60년대까지 우리의 철로를 누볐던 증기기관차들의 모델명이다. 둘 다 미제인데, 이런 이상한 이름이 붙은 것은 그 당시 우리가 외국어 표기를 줄여서 우리 식으로 적었기 때문이다. ‘미카는 본래 미국인들이 일제 수출용으로 만든 것에다 잘 보이려고 황제라는 뜻의 미카도(みかど[御門··])’를 붙였는데 그걸 미카로 줄여서 적었다. ‘파시는 영어 표기 모델명인 Pacific퍼시픽대신에 당시의 일제식 발음인 파시픽이라 한 것을 줄인 것이다.

 

이것들은 모두 일제시대에 부품이나 반제품 상태로 수입되어 우리나라의 인천정비창에서 조립되었는데 그 시기에 따라 각각 1형에서부터 5형까지 있다. 현재 미카형이 가장 많이 남아 있는데 9대가 있고, 파시5형도 5대가 있다. 이 파시5형은 국내에서 전부 조립된 첫 기관차인 데다, 영업 속도가 한국의 증기 기관차 중 최고 속도(시속 110km/h)를 돌파해서 주목을 받았다. 그때부터 급행열차라는 말이 나왔다. 특히 한국의 증기 기관차 중 유일하게 자동 급탄장치를 장착하여 기관사들이 삽질(?)을 하지 않아도 되어 철도인들에게 제일 사랑받는 기관차이기도 했다.

 

그중 가장 많이 남아 있는 미카3형이 해방 후 국내 자체 조립 생산으로 남아 있는 증기기관차의 대표 격이다. 129(국가등록문화재 제415. 국립대전현충원 내 철도기념관), 161(의왕 철도박물관), 304(국가등록문화재 제414. 제주도 연동의 삼무공원)가 그 표본들이다. 우리 파주에 남아 있는 244호도 바로 이 미카3형이다

미카3형 56호(화랑대역)

파시523(철도박물관)


 

이런 기관차 얘기. 어쩌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지나간 것들에는 모두 의미가 있다. 개인사에서부터 사회사에 이르기까지. 모든 역사들이 그렇다. 지나간 것들이라 해서 그냥 남의 일만은 아니다. 그 의미를 그냥 흘려보내는 이와 멈춰 서서 들여다보는 이들 사이에는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 안도현의 성인용 동화책 <증기기관차 미카>가 단적인 예다.

 

초등생 아들을 데리고 의왕의 철도박물관을 찾은 어느 엄마의 글을 읽다가 내가 깜짝 놀란 적이 있다. 그 아들이 미카 기관차를 보고는 엄마. 나 저거 알아요. 우리나라에서 맨 처음 여객 열차를 끌었던 증기기관차가 미카여요. 울 집에 <증기기관차 미카>라는 동화책도 있잖아요.”라고 해서다. 세상에... 어떻게 초등생이 그걸, 게다가 미카라는 이름까지도 알다니 싶었다. 하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이 증기기관차 이름이 초등생 교과서에도 나오고 있었고 안도현의 성인용 동화 <증기기관차 미카>라는 책까지 나와 있었다.

 

윌리암 워즈워즈가 그의 시 <무지개> 에서 어린이는 어른의 아버지라 한 대목이 그 아이를 통해서도 무지개처럼 살아나고 있었다. 아이를 통한 뜻깊은 되새김질이 이어지면서 오늘날 우리는 시속 300km를 넘기는 고속열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현재 전 세계에서 고속열차를 생산하여 수출하는 국가는 중국, 일본, 우리나라를 위시하여 열 손가락도 되지 못한다.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 전 세계 철도 역사를 열어온 영국조차도 고속철도 기술을 보유하지 못한 상태다.

   

흘러간 전투기 이야기에서도 배울 건 있다: 퇴역한 F-4D 팬텀기

    

임진각 평화누리공원의 오른쪽 입구 편에는 전투기 한 대가 즉시 하늘로 떠오를 자세로 전시돼 있다.

영공 수호의 임무를 마치고 퇴역한 F-4D 팬텀기다.


퇴역한 F-4D 팬텀기


팬텀기는 서양의 도깨비를 뜻하는 phantom에서 따왔는데, 꽁무니 모양이 독특하게도 눈이 큰 서양의 유령 도깨비와 닮아서였다.

팬텀기의 꽁무니. 눈이 큰 서양 도깨비를 닮았다


이 팬텀기는 여러 가지로 우리에겐 매우 각별한 존재다. 1969년 이래 55년간 가장 오래 우리 영공을 지켜 온 주력기로, 지금까지 운용해 온 전투기의 2/3 이상을 이 기종이 차지했다[F-4D 92, F-4E 103, RF-4C 27대로 총 222]. 이름은 전투기지만 폭격 기능도 수행했을 정도로 8톤 이상의 중무장을 하고 최초의 공대공 미사일을 탑재했기 때문에 이 팬텀기가 뜨면 북쪽에서는 아예 전투기를 띄우지 못했다. [현재의 최신형 최대 중무장기인 F-35A형의 8,160kg보다도 더 많은 8,480를 탑재했다. 그래서 전투기의 표지인 F(Fighter)를 달고 있지만 '전폭기'로 불린다.]

 

또 다른 사연도 있다. 1969년 남북의 대치가 극한 상황일 때 부족한 국방 예산을 메우기 위해 시행했던 방위성금 모금에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국민들은 163억 원이라는 엄청난 액수를 헌금했고, 그중 71억 원으로 당시 최신 전투기였던 F-4D 5대를 구입했다. 거기에 박정희 대통령이 붙인 이름이 '필승편대'였고 기체에는 방위성금헌납기라고 적어서 구별했다.

 

1983년 북한의 이웅평 대위(1954~2002. 대한민국 공군 대령으로 예편)가 미그-19를 몰고 서해안으로 귀순했을 때 출격하여 북한 측의 위협 비행을 차단한 것도 바로 팬텀기였다. 팬텀기가 나타나자 북한 전투기는 상대가 안 될 것을 뻔히 알기에 즉시 꼬리를 뺐다고 한다

F-4D 팬텀. 방위성금헌납기

1983년 서해상으로 귀순하고 있는 미그19(앞쪽)를 호위 중인 팬텀기


우리나라는 우리가 자체 생산하여 수출까지 하고 있는 자랑스러운 우리의 비행기들이 있다. 초음속 비행연습기 T-50과 이를 모태로 삼아 경공격기로 개발한 FA-50 ‘파이팅 이글’, 그리고 4.5세대 전투기 KF-21 ‘보라매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수준에까지 오른 것은 1986KF-16을 국내에서 최초로 생산하면서다. 미국의 F-16 을 라이선스로 조립 생산하면서부터 기술 축적과 부품 자급율이 높아졌고(40% 이하에서 59%), 그것을 기반으로 오늘날의 초음속기 생산으로 도약하게 되었다. KF-21은 진정한 최초의 국산 전투기라 할 수 있는데, 현재의 국산화 비율은 65%지만 80% 이상으로 늘릴 예정이다.

 

팬텀기는 우리의 공군사에서 가장 굵고 깊게, 그리고 최장 기간을 기록한 기종이다. F-4DRF-4C는 이미 퇴역한 지 오래고 F-4E도 순차적인 퇴역을 거쳐 현재 10여 대 정도만 남아 있는데, 지난 67일 퇴역식을 치르면서 공식적으로 모두 현역에서 물러났다. 퇴역 후에는 각 공군기지에 배치되어 적의 공격 시 디코이(미끼) 역할을 하게 된다고 한다.

 

이러한 팬텀기의 활약상을 기억하기 위해 지난 59일 특별한 고별 비행이 있었다. 팬텀기가 편대를 이루어 중간 휴식을 포함하여 5시간에 걸친 국토 순례 비행을 했는데, 그중 한 대는 1969년 당시의 정글 무늬 도색을 했고 나머지 기체들에는 이별 문구,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1969-2024’를 새겼다.


고별 비행을 앞두고 기체 옆구리에 새긴 글씨, ‘국민의 손길에서, 국민의 마음으로 1969-2024’

고별 비행 국토 순례 중인 필승편대. 맨 위쪽의 것이 방위성금으로 구입된 팬텀기의 최초 외관 도장(정글 무늬)으로 고별 비행을 위해 복원한 것


현재 파주의 평화누리공원에 전시돼 있는 팬텀기의 정확한 족보는 F-4D-31-MC66-7753으로 F-4D 도입순으로는 61호다. F-4D 팬텀기는 퇴역 후 전국 도처에 전시돼 있는데 공원으로는 다음의 8곳이 있다. 괄호 안은 공원 이름: 서울(보라매), 천안(태조산), 군산(진포), 강릉(통일), 구미(동락), 대전(보라매), 포항(몰개월), 문경(모전).

 

실은 파주에 이 팬텀기가 한 대 더 있다. 서울호서직업전문대 파주캠퍼스의 본관과 잔디마당 사이, 주차장 한 쪽 끝쪽에 말없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F-4D 15호기로 도입순에서는 평화누리공원의 것보다 고참이다


날개를 접고 쉬고 있는 F-4D 팬텀기


지나간 것들에는 모두 의미가 있다. 역사는 역사를 먹고 성장한다. 지나간 것들 앞에서 잠시 멈춰서서 그 앞뒤의 의미를 곰곰 되새겨 보는 일은 역사의 발전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 개인사와 사회사 모두에... 역사가 산타야나는 말했다. ‘발전은 변화가 아니라 기억에 달려 있다. 과거를 기억할 수 없는 사람은 그것을 반복하는 벌을 받는다. 이 말을 단순하게 해석하자면 역사를 돌아보지 않는 이들은 미래가 순탄치 않다고도 할 수 있다. 토머스 제퍼슨도 거들었다. ‘역사는 사람들에게 과거를 알려주어 그들이 미래를 판단할 수 있게 해줄 것이라고.우리가 역사적 가치가 있는 유물들 앞에서 잠시라도 앞섶을 여며야 하는 이유로 충분한 말들이 아닐까 싶다. <>

 

[취재] 파주알리미 최종희